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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 파워가 '韓流의 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9면

"한번 내용을 보시고 나서 말씀해 주세요. 여기 드라마 시놉시스(줄거리)와 출연자들 프로필(약력)이 있습니다. 한국에서 아주 잘나가는 배우들이에요. 시청률도 높았고요. 일단 방영하면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1993년)

"글쎄요, 아직 드라마가 시작도 안했는데 여기저기서 계약하자고 난리예요. 지금으로선 당장 체결하긴 힘들고요. 조금만 기다려 보시죠."(2002년)

한국의 드라마를 해외에 수출하는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K씨가 해외 바이어를 만나면서 겪었던 체험담이다. 판매가격 협상은 고사하고 방송해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하던 10년 전에 비해 요즘은 앞다퉈 작품을 사가려는 양상이 됐다. 해외에서 우리 드라마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음을 말해준다.

MBC는 최근 일본의 TV아사히에 드라마 '이브의 모든 것'을 18만달러(약 2억3천만원)에 수출했다. 일본의 지상파 방송에 한국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다른 아시아 국가와 달리 굳게 닫힌 일본 시장의 문을 본격적으로 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 드라마가 아시아에서 인기가도를 달리는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인만한 미남미녀도 없다=해외 바이어들이 국내 드라마를 살 때 가장 궁금한 부분은 두가지. 출연 배우가 누구냐, 국내 시청률은 어땠느냐다. 아시아에서 한국 드라마가 약진하는 까닭은 스타 연기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장동건·안재욱·원빈·송혜교·최진실은 드라마를 통해 해당 국가의 스타들 못지않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실제로 장동건이 출연한 MBC '의가형제'가 해외에서 호평받은 뒤 장동건이 출연했던 사극 '일지매' 도 날개돋친 듯 주문 신청이 들어 왔다.

MBC 프로덕션의 진혜원씨는 "아시아계 팬들은 한국 배우들이 단연 예쁘고 잘 생기고 세련됐다고 생각한다"며 "앞으로 드라마를 수출할 때 스타를 앞세운 마케팅이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 덕을 봤다?=10년 전만 해도 아시아권에 방송되는 해외 드라마는 일본산(産)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콧대가 높아져 일본 프로그램의 수출가격이 턱없이 높아졌다. 결국 상대적으로 판권료가 싼 한국의 프로그램으로 바이어들이 발길을 돌리게 됐다.

한 프로덕션 관계자는 "일본은 판권료가 한국보다 훨씬 비싸다. 일본이 판권료를 현재의 20%포인트만 낮춘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시아권의 반일(反日)감정도 한국 드라마에 유리하게 작용했다. 향후 가장 큰 시장으로 평가받는 중국에서 일본보다는 한국의 드라마를 선호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활을 건 싸움이 경쟁력을 길렀다=한국은 그야말로 드라마 왕국이다. 미니시리즈·일일드라마·아침드라마·특별기획 등 한국만큼 드라마의 종류와 양이 많은 나라도 없다. 양적 팽창은 질적 향상으로 이어졌다.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스토리는 좀더 치밀해지고 다양해졌으며 고급스럽고 현란한 영상이 자리잡았다. 해외 시청자는 이러한 고급 드라마에 열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을동화''겨울연가'를 연출한 윤석호 PD는 "드라마가 쏟아지는 데다 시청자들의 기호도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이에 걸맞은 수준의 드라마를 만들 수밖에 없다"며 "완성도가 높은 드라마가 해외에서 인기를 끄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한국 드라마가 너무 대중적 취향에 치우쳐 있다는 점, 스타에 지나치게 의존한다는 점에서 열기가 얼마나 오래 갈지 의문을 품는 이들도 많다. 그런 면에서 드라마의 한류(韓流) 열풍을 이어가려면 프로그램 합작·교류 등이 더욱 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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