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경기 안좋은데 빌딩은 쏟아지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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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1면

일본이 이른바 '2003년 문제'로 초비상이다. 내년 초 도쿄(東京) 도심에 신축 중인 초고층 빌딩들이 일제히 완공되면 임대료가 폭락하고 그 여파로 금융권까지 타격을 받게 된다는 불길한 예상 때문이다.

◇경기는 안 풀렸는데 빌딩만 늘어=내년 중 새로 쏟아져 나오는 대형 오피스 빌딩의 연면적은 2백27만㎡(약 69만평)에 달한다. 연간 신규 공급 물량으로는 사상 최대며 1980년대 말 버블기의 두배에 달한다.

반면 빌딩 수요는 줄어들고 있다. 구조조정과 경기위축으로 합병과 부도가 동시에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령화로 취업자수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는 '2003년 문제'에 이어 '2010년 문제'도 거론되고 있다.

◇왜 한꺼번에 빌딩이 들어서나=일본 정부가 과거 국영철도회사(국철)의 부채를 정리하기 위해 국철 보유의 알짜배기 땅을 98년 3월 일제히 매각하자 이곳에 부동산업체들이 경쟁적으로 빌딩을 짓게 됐다. 도쿄의 시나가와(品川)·시오도메(汐留)·이이다바시(飯田橋) 등에 연면적 1만㎡(3천여평) 이상인 대형 빌딩이 44동이나 새로 들어선다. 도쿄역 주변 마루노우치(丸の內)와 롯폰기(六本木)의 재개발 사업으로 신축빌딩들이 완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부동산값 다시 폭락하나=지난 연말 4%대이던 도쿄의 사무실 공실률은 최근 5%로 높아졌다. 오피스빌딩종합연구소는 내년엔 이 비율이 단번에 11.4%까지 상승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임대료도 큰 폭으로 하락할 전망이다. 도쿄 도심부의 사무실 임대료는 90년대 초 평당 월 4만엔대에서 최근엔 1만9천엔대로 떨어졌다. 내년에는 전체 부동산 가격이 동반하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크다.

부동산업체들의 경영이 악화되면 금융권으로 불똥이 튈 수밖에 없다. 담보 가치가 떨어지면 은행들의 부실채권도 더 늘어나게 된다. 일본 정부는 넘쳐나는 업무용 건물을 주거용으로 전용할 수 있도록 규제완화와 금융지원에 나섰다.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책은 역시 경기회복뿐이어서 '2003년 문제'의 파장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도쿄=남윤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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