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갑의 眞意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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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민주당 한화갑 대표는 독실한 가톨릭 신자다. 그가 성당에서 기도할 때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모든 잘못이 제 탓임을 깨닫게 해주십시오."

그는 이 말을 평소에도 되뇐다. 대화를 하다가도 오른손으로 가슴을 치며 "내탓이야"라고 중얼거린다.

그는 늘 자기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신앙에 기초한 스스로의 다짐이란다. 실제로 그는 거짓말을 잘 못한다. 금세 얼굴이 벌게지고 말이 엉킨다. 때문에 아예 입을 다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얻은 별명이 '갑갑이'다. 말을 안하니 믿음을 못주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오해를 사기도 한다. 그러다가 간혹 투박하고 거친 표현을 토해낸 적도 있다. 거짓말을 못하는 그의 성격 때문이라고 지인들은 말한다.

그런 그가 희대의 거짓말쟁이로 몰렸다. 이인제씨의 주장이다. 노무현 후보 정리 약속을 어겼다는 거다. 결국 후보를 신당 후보로 다시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탈당하겠다는 얘기다.

"갑갑할 따름이에요. 나는 노무현이를 위해 일하는 게 아니에요." 韓대표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신당은 이길 수 있는 대통령후보를 고르자는 거예요. 그러나 대전제가 있어요. 당이 깨져서는 안돼요."

신당의 핵심이 반이회창 연대이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후보도 일단 신당에 합류시켜야 했다. 방법은 후보의 경선 참여 허용밖엔 없었다. 후보 스스로가 재경선을 공약했기 때문이다. 공약 이행의 절차를 신당 참여로 묶어 맨 거다. 그게 전부라는 韓대표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韓대표가 생각한 새 후보는 누구였을까. 그것이 모든 문제의 발단이다. 韓대표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회창을 이길 수만 있다면 누가 되든 상관없어요."

그렇기에 자신은 중립이라고 했다. 그러나 측근 중에는 다른 견해도 있다. 동교동계인 설훈 의원이다. 그는 韓대표가 후보를 생각했다고 했다. 현실적으로 다른 선택이 없다는 것이다. 정반대의 얘기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측근의 설명이다.

"신당에 JP·김윤환·이한동·박근혜·정몽준씨가 들어온다고 쳐봐요. 혼자 달랑 들어오는 게 아닙니다. 지분을 갖고 오는 겁니다. 물론 이인제씨, 韓대표도 지분이 있어요. 결국 그들끼리 정하는 후보가 된다고 봐야죠. 그게 韓대표의 생각이었어요."

그렇게 되면 후보가 끼어들 공간은 없다는 것이다. 그들이 후보를 배제하기 때문이다. 저절로 정리된다는 논리다. 실제로 韓대표는 각 정치세력의 동일지분 신당참여를 말한 바 있다.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다. 그것은 민주당 지분의 평가절하를 의미한다. 노무현 지분은 최소화된다. 사실이라면 韓대표가 이인제씨를 속인 게 아니다. 설명을 안해줬을 따름이다. 이인제씨를 못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인제씨도 韓대표를 안믿은 거다. 그것이 오늘의 사태를 불러왔다.

한화갑. 그는 여러 마리의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 했다. 그 때문에 모두를 놓치고 말았다. 민주당은 지금 분당 상황이다. 뿌리 깊은 상호불신의 종점이 지금이다. 민주당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믿음을 받으려 한다면 주어야 하고 주려 한다면 받을 생각을 말아야 진짜 믿음이다. 그것만이 그들을 살릴 수 있는 유일한 처방인 듯싶다.

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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