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 + 파워" 거장이 큰다 : 데뷔 앨범 낸 피아니스트 임동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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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2000년 9월 1일 이탈리아 언론들은 볼자노에서 열린 제 51회 부조니 콩쿠르 본선 소식을 대서 특필했다.'부조니 쇼크''최대 유망주 결선 탈락' 등의 제목을 달면서 심사가 진행되는 도중 한결 같이 의혹을 제기했다.

주최측이 3명이 올라간 결선에서 대회 사상 처음으로 1,2위 입상자를 내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이다. 아깝게 5위에 입상한 '부조니 쇼크'의 주인공은 지난해 파리에서 열린 롱 티보 국제 콩쿠르에서 당당하게 대상을 차지한 피아니스트 임동혁(林東赫·18)이다.

그가 어느덧 차세대 거장의 자리를 예약할 만큼 성장했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61)가 후견인으로 나선 것이다. 아르헤리치는"유려하고 세련된,자연스런 음악"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고 세계 굴지의 레이블인 EMI에서 데뷔 음반을 내도록 적극 추천했다.

임동혁이 데뷔 음반의 국내 출시에 맞춰 오는 9월 7일 오후 6시 LG아트센터에서 첫 독주회를 연다. 지난 1월 신년음악회에서 코리안 심포니와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3월 통영국제음악제에서 정명훈 지휘의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제2번을 협연해 호평을 받았지만 독주회로는 이번이 데뷔 무대다.

당시 임군이 연주한 차이코프스키 협주곡을 듣고 기자는 이렇게 썼다. "음악의 흐름에 따라 완급을 조절하면서 눈부신 음색과 정교한 리듬을 구사했다.(…)빠른 악구에서도 악상을 얼버무리지 않으면서 박진감을 살려냈다.신기(神技)에 가까운 테크닉도 따뜻하게 다가왔다."

이번 독주회 프로그램 중 쇼팽의 '소나타 제3번'을 제외하면 모두 최근 참가한 국제 콩쿠르에서 실력을 뽐냈던 곡들이다. 모두 데뷔 음반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슈베르트의 '4개의 즉흥곡'은 부조니 콩쿠르 준결선과 하마마쓰 콩쿠르 본선에서 연주했던 곡. 명쾌하고 정확하며 시적 감성이 넘치는 연주를 들려준다. 영롱한 빛깔의 구슬을 꿰놓은 목걸이처럼 눈부신 제2번과 제4번도 좋지만, 화려한 분산화음 가운데 오롯이 선율을 돋보이게 하는 제1번과 제 3번이 한층 가슴에 와닿는다. 라벨의'라 발스'는 역시 부조니 콩쿠르 준결승에서 연주했던 곡. 아직 광기(狂氣)나 풍자 같은 세기말적 정서를 담아내지는 못하지만, 수많은 짧은 음표들을 하찮은 것으로 내버려 두지 않고 거대한 음악의 파도 속에 녹여낸다.

쇼팽을 무척 좋아한다는 그는 키 1m74㎝,몸무게 47㎏의 호리호리한 체격의 소유자. 1월 서울 공연 이후 국내 소녀팬들도 많이 늘었다. 열살 때 아버지(임홍택 삼성물산 모스크바 지사 상무)를 따라 러시아로 건너갔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함께 피아노를 배우고 있는 형 동민(22)씨는 지난해 부조니 콩쿠르(3위)에 이어 지난 6월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5위)에 입상했다.02-2005-0114.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임동혁 약력

1984:서울 출생

1994:모스크바 중앙음악학교 입학

1996:모스크바 쇼팽 청소년 콩쿠르 2위

1999:차이코프스키 음악원에서 레흐 나우모프 사사

2000:볼자노 부조니 콩쿠르 5위, 하마마쓰(浜松)콩쿠르 2위

2001:롱 티보 국제 콩쿠르 대상

2002:EMI에서 데뷔 음반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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