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혼의 性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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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조선 후기의 춘화(春畵) 중 걸작으로 꼽히는 것 가운데 사계절을 배경으로 각계 각층 남녀의 성희(性戱)를 표현한 연작 10여점이 있다.

김홍도(金弘道·1745~?)의 도장자국이 선명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후세(19세기 초)의 누군가가 가짜도장을 만들어 찍었을 것으로 추측한다. 남녀의 성기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일련의 작품 중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초가집 마루의 노인부부를 묘사한 그림이다.

장독대 뒤로 대나무숲이 바람에 가볍게 흔들리는 나른한 오후 무렵으로 보인다.초가 마루에서 대머리에 수염이 성성한 할아버지는 완전 나체가 돼 무언가 애태우는 표정이고,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할머니는 오랜 반려자 앞에서 기꺼이 치마를 걷어보이고 있다. 춘화라기엔 너무 안쓰럽고 보기에 따라 섬뜩한 느낌도 드는 그림이다.

옛날 어떤 장난기 있는 떠꺼머리 총각이 한동네에 사는 홀로 된 할머니에게 불손하게도 "할머니 연세에도 욕심이 납니까"라고 물었다. 호호백발 할머니는 아무 말 없이 방안에 놓인 질화로로 다가가 부젓가락을 집어들었다. 새하얗게 덮인 재를 부젓가락으로 들쑤시자 시뻘겋게 달아오른 숯덩이들이 금세 몸을 드러냈다.

최근 영화 '죽어도 좋아'가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사실상 상영금지에 해당하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일을 계기로 노인의 성(性)이 새삼 화제로 떠올랐다.

한국의 65세 이상 인구는 3백37만명(전체의 7.1%)이나 되고, 이 중 48%는 위에 소개한 조선조 춘화에 담긴 파적(破寂)조차 시도해보기 힘든 독신이다. 65~70세 노인의 90%가 "아직 성욕이 있다"고 대답한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문제는 사회적 마이너리티(소수자)인 노인들의 성생활을 당사자들은 머뭇거리거나 감추고 자녀 세대는 이중 기준으로 대한다는 점이다.

73세의 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이 34세 연하의 바이올리니스트와 결혼하고 배우 앤서니 퀸이 80세에 아들을 낳은 일은 부러워하면서도 부모 세대는 '희생'해주길 은근히 바란다. 마치 자신들은 노인이 되지 않을 것처럼.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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