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兵風 테이프' 공개 왜 미루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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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후보 아들의 병무비리를 폭로한 김대업씨가 유력한 증거라고 주장했던 관계자 육성 녹취 테이프를 5일 검찰에 출두하면서 제출하지 않았다. 테이프가 모든 의문을 한꺼번에 해소하면서 상대방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위력을 지녔다는 점을 모를 리 없는 金씨가 테이프 공개를 미루는 것은 석연치 않다. 온 국민의 관심사인 데다 내용 검증에 시일이 걸릴 수 있는 만큼 金씨는 테이프 공개를 서둘러야 한다.

金씨는 검찰 수사 의지를 살펴본 뒤 변호사와 상의해 테이프 제출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경우에 따라선 제출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자신의 말 몇 마디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는데도 정작 당사자가 나 몰라라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사실 金씨 행적에는 의문이 많다. 전과내용도 불명예스럽고 수험생 자녀 등 가족이 해외로 나간 것도 부자연스럽다. 여기에 특정 정당과의 유착 의혹이 불거지고 재소자 신분으로 장기간 병무비리 수사요원으로 활동한 전력까지 드러나는 등 의심가는 대목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런 정황에서 金씨가 테이프 공개를 미루면 미룰수록 결국 폭로내용에 대한 믿음은 줄어들고 순수성에 대한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제 테이프 등 물증 확보는 검찰의 몫이다. 테이프의 실체와 내용 규명이 사건 수사의 전부라 할 수 있다. 검찰은 마냥 金씨 입에 의존하거나 金씨 스스로 제출하기를 기다리지 말고 적극적인 수사의지를 보여야 한다. 아울러 검찰이 재소자 신분이던 金씨에게 사복을 입혀 장기간 수사요원으로 활용했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수사는 결과에 못지않게 절차나 과정도 중요하다. 검찰은 신속한 자체 감찰로 金씨의 수사팀 참여경위와 수사활동 내용을 밝혀 공개하고 관계자를 문책해야 한다. 병무비리 폭로내용 수사와 별도로 金씨의 검찰수사 관여 의혹도 밝히는 게 검찰 신뢰회복의 첩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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