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 그늘 아련한 기억 지금은 빈 마을로 변한 고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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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밤낮으로 자동차가 개미처럼 잇대어 달리고 있는 서울의 거리. 그 한쪽 치마폭만큼의 땅에도 연립주택이 들어서고, 앞마당 크기의 빈터라도 있으면 어김없이 아파트가 들어선다. 도시의 일상은 쫓기듯 분주하지만 정작 이웃과는 절벽 같은 벽을 쌓았다가 바람처럼 떠나면 그만이다.

시간시간의 적막, 하루하루의 생계와 잘 살기 위한 나홀로만의 생존이 있을 뿐이며, 이웃과 더불어 사는 여유와 정겨움을 잊어버린 지 오래다. 그렇게 기원하던 공업화·도시화·현대화가 가져다 준 '서울민국'의 기형적 모습이다.

좋은 것, 나쁜 것이 실타래처럼 뒤엉켜버린 수도권 서울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마지막 기댈 곳은 어딘가.

도시의 모든 이들에게 고향이란 말이 어머니 품처럼 정감있게 다가오는 것은 너나없는 진실이다. 물론 제각각 태를 묻고 유소년을 보냈던 그런 고향이 아니어도 좋다. 우리나라 방방곡곡 자연의 품속에 오순도순 더부살이하는 농촌이 바로 우리의 고향이다.

우리네 고향 농촌은 잘 살고 못 살고를 떠나 늘 전형적인 이미지로 남아있다. 집 앞에는 내와 논밭이 있고, 마을 뒤 크고 작은 산에는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한여름에는 시원한 느티나무 그늘이 있고, 모정도 있다. 겨울에는 마을 사랑방이나 부잣집 바깥 사랑방이 있다. 마을의 대소사가 논의되는 그런 공간이며, 간혹 나그네가 부담 없이 쉬어가는 그런 공간으로 말이다.

종가와 대가집을 중심으로 음식과 정을 나누어 사는 사랑의 망이 끝없이 이어진다. 사랑과 정담, 내외 소식, 충고와 질책의 교화교육이 온라인 오프라인으로 연결돼 있다. 일과 휴식, 작업과 놀이가 계절적으로 구분되고, 가진 것을 떠나 성실함과 부지런함이 인정되고 서로를 아껴주는 곳이다. 우리의 자연생태계가 펼쳐있고, 질 좋은 유기질 농산품을 산출하는 농촌은 그래서 어머니의 자궁과 같다. 그야말로 도시인의 생명줄이고, 서울민국 사람의 원향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우리의 원향 농촌에는 어린애 울음소리가 그쳤다. 오로지 우리 486세대들을 안아 키운 부모님만 늙수그레하게 지키고 있다. 우리가 고향으로 돌아가 농촌을 살리자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우리 모두 은퇴 후에라도 농촌으로 돌아가는 것을 생각해 봄직하다. 모든 공직자, 사회지도층은 물론이고 위로는 대통령부터 임기 후에는 고향에 돌아가는 그런 풍조가 필요하다.

합천의 가야산, 대구의 팔공산 자락, 거제도 장목리, 하의도 후광마을에 귀향해 나라가 어려울 때 큰 어른으로서 시대를 읽는 잠언을 가끔씩 들려주자. 그럴 때 서울은 조용해지고 국민은 대통령을 그리워하며 행복해 할 것이다. 실패한 모든 이들도 고향의 자연과 어른들은 항상 따뜻하게 맞아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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