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자사주 1조 매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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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삼성전자가 2일 1조원어치의 자사주를 사들이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 주가가 당분간 30만원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서 전체 증시에 버팀목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일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날 임시 이사회를 열고 보통주 2백66만주, 우선주 40만주를 사기로 결의했다. 이는 최근 1개월 평균 주가를 기준으로 총발행 주식의 1.7%에 해당한다.금액도 당초 계획됐던 5천억원보다 배나 늘어난 규모다.

이는 지난달 말 시가총액 기준으로 대신증권이나 삼성중공업을 통째로 살 수 있는 규모다. 삼성전자측은 "현재 주가가 회사의 실질적인 가치보다 더 낮은 수준이기 때문에 이번 결정이 주가 안정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발표는 당장 시장에 영향을 미쳤다. 장 초반 3.6%나 떨어졌던 삼성전자 주가는 자사주 매입 발표를 계기로 하락폭이 크게 줄어 전날에 비해 1.5% 내리는 데 그쳤다.

<그래픽 참조>

이에 대해 대우증권 정창원 선임연구원은 "삼성전자가 현금 1조원을 동원할 만큼 자금 여력이 많다는 것은 주가 급락 속에서도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는 해외 반도체 업체와는 여건이 다르다는 것을 입증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앞으로 삼성전자가 해외 반도체주와 차별화된 주가 흐름을 보일 수도 있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삼성증권 임홍빈 팀장도 "주가의 저평가 정도로 볼 때 매입 결정을 한 시점은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번 조치가 버팀목이 될 수는 있겠지만 반등의 기폭제가 되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미국 경기의 침체와 원·달러 환율의 하락에 따른 수출 위축 등 주변 여건을 바꿀 수는 없기 때문이다. 동원증권 김정환 연구위원은 "외국인들에게는 삼성전자 보유 지분을 적정 수준으로 낮출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에 오히려 매도를 부추길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 이번 조치가 전체 시장에 영향을 미치려면 현금 여력이 많은 다른 기업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가 관건이다. 신영증권 장득수 리서치부장은 "SK텔레콤·KT 등이 삼성전자의 결정을 계기로 자사주 매입에 나선다면 정부의 인위적인 증시 부양책보다 훨씬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훈·양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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