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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권 전체 長期 청사진이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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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가 3차 수도권 정비계획에 '수도권 억제'만을 외쳐왔던 1,2차 계획 때와는 달리 수도권 내 불균형 해소를 목표로 한 대규모 개발계획을 담을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예상되고 있다.

각 경제부처 및 수도권 지역 지방자치단체들이 너도나도, 이런저런 명분과 이유를 내세워 독자적인 개발계획을 세우는 바람에 이미 '수도권 집중 억제'라는 정부의 기본 시책은 빛을 상당히 잃은 상태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차제에 '솔직하고, 분명한' 수도권 정책 방향을 새로 세워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마스터플랜이 없다=수도권 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말(억제)과 실제(개발)가 다른 데다▶잇따라 발표되고 있는 개발계획들조차 내용이 서로 상충하거나 중복돼 국민 혼란만 불러오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수도권 집중 억제를 위해선 인구 억제를 해야 한다고 하지만 최근 1~2년새 발표된 판교신도시 조성, 수도권 그린벨트 내 국민임대주택 건설, 수도권 택지공급 5개년 계획, 영종·김포·송도 개발, 고양·시화지구 개발계획 등을 보면 모두 대규모 주택건설계획을 담고 있다.

더욱이 수도권 택지개발 5개년 계획에는 비슷한 시기에 발표된 영종·송도·김포매립지에 들어설 주택은 전혀 포함하지도 않았다. 종합적인 계획의 부재(不在)다.

또 영종도·송도·김포 등 경제특구 대상지역은 각각 국제업무기능을 하고, 관광·위락시설을 유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으나 중복 기능을 어떻게 소화할지에 대한 대책은 없는 상태다.

아주대 제해성(건축학과)교수는 "수도권 전체에 대한 큰 틀의 계획없이 부분적인 계획들을 산발적으로 내놓아 결과적으로 '계획적 마구잡이 개발'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즉 계획을 했다고는 하지만 각 계획의 내용이 상충·중복돼 수도권 전체로 볼 때는 마구잡이 개발이 되고 있다는 것.

또 말로는 집중 억제를 내세우면서 실제론 개발을 추진하는 식으로 정책의 투명성·일관성이 결여돼, 이해가 얽힌 기업이나 주민들도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려운 형편이다. 한현규 경기도 정무부지사는 "경기도는 세계와 경쟁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며 "그동안 집중억제라는 명분으로 경기도의 마구잡이 개발만 초래했다"고 지적했다.

◇지방·수도권의 조화가 필요=전문가들은 '수도권 억제=지방 발전'이라는 도식으로는 두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고 지적한다. 수도권과 지방을 함께 발전시킬 모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韓부지사는 "수도권을 국제비즈니스 중심지로 키우려면 더 이상 억제책만으로는 안된다"며 "수도권을 체계적으로 개발하되, 개발에 따른 이익을 환수해 지방산업 육성에 쓰는 전향적인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강대 김경환(경제학과)교수는 "실효성은 뚜렷하지 않으면서 경쟁력만 떨어뜨리는 각종 수도권 규제들을 과감하게 없애야 한다"고 제안했다. 공장을 못 짓게 하다 보니 이미 공장 등을 갖춘 기존 대기업들만 유리해진데다 그런 기업들도 확장을 못해 생산성이 떨어지고 경쟁력을 잃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기업원 김정호 부원장은 "대규모 개발을 억제한 결과 소규모 마구잡이 개발이 잇따라 이로 인한 환경 오염은 더 심해졌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방 발전을 위해선 돈과 사람이 지방으로 몰리도록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정훈 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은 "지방 정부의 재정을 튼튼히 하도록 각종 지방세제를 보완하고,수도권 개발이익을 흡수해 지방에 배분해야 양 쪽이 다 산다"고 밝혔다.

또 성균관대 임창복 교수는 "수도권 유명 대학들의 지방 이전을 유도하고, 지방에 우수 고교를 키워 지방에 인재가 모이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토연구원의 이동우 연구위원은 "수도권과 지방의 공동 발전을 위해 장기적으로는 프랑스의 '주(州)간 불균등 시정기금'(재정이 풍부한 주가 부족한 주에 기금을 지원) 같은 제도를 만들거나, 영국의 RDA(Regional Development Agencies)와 같은 '지역개발사업 총괄기구'를 설치해 자체 개발 능력이 떨어지는 지방 정부를 위해 중앙 정부가 계획을 세워주고 자금도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신혜경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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