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 규제' 私債시장 동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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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사채 이자 상한선을 연 70%로 정한 대부업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사채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정부는 이마저 높은 이자율이라며 시행령에서 상한선을 연 60%로 더 낮추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서민들의 고금리 부담을 막겠다는 이자율 규제가 거꾸로 서민들의 급전 대출길을 막을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10년 주기로 온다는 '사채 대란'의 가능성마저 제기하고 있다.

이자율 상한에 걸려 수지타산을 맞추지 못하게 된 대부업자들이 문을 닫거나 다시 지하로 숨어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대부업법에 따르면 관할 지방자치단체에 등록하지 않고 대부업을 하면 5년 이하의 징역 처벌을 받는다. 이자는 연 70% 이내에서만 받을 수 있고 이를 웃도는 금리 부분은 원천적으로 무효다.

대부업계는 그러나 연 70% 이내의 금리로는 생존 자체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사채업자들의 모임인 한국소비자금융연합회와 한국대부사업자연합회의 인터넷 설문 조사에 따르면 대부업체들은 법이 시행되는 10월 중순 이후 80~90%가 무등록 불법 영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신뢰도가 다소 떨어지는 조사방법이긴 하지만 사채시장의 현실은 정부나 국회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규모가 큰 대부업체인 대호크레디트의 서용선 대표이사 사장은 "중소업체는 과거 숨어서 (사채)장사를 해본 실력자들이므로 음성화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자율 제한이)사채업을 제도권으로 끌어들여 양성화하겠다던 당초의 법제정 취지를 퇴색시켰다"고 말했다.

일부 대부업자들은 편법으로 이자 상한선의 규제를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을 찾을 것으로 보인다. 3천만원이 넘는 대출에 대해선 이자 제한이 없고, 거래의 체결과 변제에 관한 부대비용은 이자개념에 넣지 않는 대부업법의 허점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상호저축은행 등 기존 제도권 금융기관과 거래하는 고객을 유치해 손실률을 낮춰 생존해 보겠다는 업체도 있다.

금융감독원은 1만여개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는 대부업체 중 80~90%가 문을 닫거나 음성화해 급전이 필요한 사람들은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했다. 조성목 금감원 비제도금융조사팀장은 "지난 5월 사채를 쓴 6천8백2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과반수 이상이 제도권 금융기관의 빚을 갚기 위해 사채를 쓴 것으로 나타났다"며 "금리 규제로 제도권 금융기관까지 어려움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이자 상한제는 대부업(사채)시장의 가격을 인위적으로 규제함으로써 급전이 필요한 서민들의 불편과 금융권의 왜곡만 불러올 우려가 커진 셈이다.

허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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