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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엔 사흘 새 한 달 장맛비 쏟아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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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17일 새벽에 내린 집중호우로 대구시 노곡동 일대의 주택 40여 채와 차량 90여 대가 침수 피해를 봤다. 주민들이 물에 젖은 가재도구를 세척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잠을 자다 빗소리에 깨 나가보니 도로가 강처럼 변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차량이 떠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금호강변인 대구시 북구 노곡동 주민 김재철(61)씨의 말이다. 그는 “10여 분 뒤 마을 저지대 주택 수십 채가 물에 잠겼다”며 고개를 저었다. 17일 쏟아진 집중호우로 이 마을 44가구가 물에 잠기고 도로에 세워진 차량 96대가 침수됐다. 폭우에 떠내려온 나뭇가지와 쓰레기 등이 배수펌프장의 유입구를 막으면서 저지대에 물이 찬 것이다. 대구 북구청의 김점용 하천담당은 “신고를 받고 배수 펌프를 가동하려 했으나 이미 저지대가 침수된 상태였다”고 말했다.

16∼17일 전국에 내린 호우로 피해가 속출했다. 17일 오전 3시쯤 전남 목포시 연산동 백련마을 김모(53·여)씨 집 뒷산의 토사 20여t이 쏟아지는 등 전남 지역 5곳에서 소규모 산사태가 발생했다. 이날 오전 5시쯤에는 경북 고령군 운수면 화암리의 한 식당을 토사가 덮쳤다. 경북 고령군 다산면 쌍림리의 논 30여만㎡가 침수되는 등 고령군에서만 농경지 250만㎡가 물에 잠겼다. 충남 태안·서산 지역의 농경지 358만㎡와 염전 33만8000㎡도 침수 피해를 봤다. 전남에서는 여수·여천 등지의 농경지 735만㎡가, 경남 사천·합천 일대의 농경지 224만5000㎡와 고추·수박 비닐하우스 103동도 일시 침수됐다.

경남 함안군 산인면에서는 16일 오전 8시20분쯤 경전선 철로 50m가 유실돼 10시간 만인 오후 6시30분 복구됐다. 진주시 명석면 오미리 국도 3호선 등 창원·함안·창녕·합천 지역 도로 12곳의 비탈면이 유실되면서 차량이 한때 통제되기도 했다.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17일 오전 11시30분쯤 경기도 안양시 관양2동 학익천에서 남모(67)씨가 물에 빠져 숨졌다. 이날 낮 12시30분쯤 논에 물꼬를 보러 나간 오모(70)씨가 충남 아산시 인주면 삽교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또 18일 오전 11시55분쯤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법천리 남한강에서 다슬기를 잡기 위해 강가에 나온 어린이 3명이 급류에 휩쓸려 2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이날 사고는 이모(11·충북 충주시·초등4)양이 발을 헛디뎌 물에 빠지자 이양의 언니(13·초등6)와 오모(14 ·중1)양 등이 이양을 구하려고 물에 뛰어들면서 발생했다. 이양과 오양은 사고 직후 발견됐으나 이양의 언니는 실종됐다. 사고가 난 지역은 16~17일 이틀간 85㎜의 많은 비가 내렸다. 또 17일 오전 5시35분쯤 강원도 횡성군 우천면 영동고속도로에서 이모(35)씨가 몰던 승용차가 가드레일 등을 들이받아 이씨가 숨지는 등 크고 작은 빗길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중국서 수증기 대량 유입된 탓=전국적으로 16일부터 18일까지 장맛비가 내린 가운데 일부 지역에서는 300㎜가 넘는 ‘물폭탄’이 쏟아졌다. 이 기간 가장 많은 비가 내린 충남 태안은 강수량이 무려 330.5㎜나 됐다. 통상 장마철 한 달 동안 내릴 양의 비(1971~2000년 평균값, 338.1㎜)를 2~3일 사이 한번에 퍼부은 셈이다. 전남 여수도 290㎜를 기록했고 경남 산청은 280㎜, 경남 남해는 273.5㎜ 에 달했다. 중부지방도 제법 많은 비가 내려 문산(경기)이 212㎜, 강화(인천) 185㎜, 철원(강원) 183㎜, 서울 148.5㎜였다. 기상청의 오봉학 통보관은 “장마전선이 북한까지 북상하면서 많은 비를 뿌렸다”며 “최근 홍수가 일어난 중국 남부지방에서 대량의 수증기가 발생한 뒤 태평양 고기압의 가장자리를 따라 한반도로 들어와 비교적 차가운 공기와 만난 게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23일에는 또 한차례 장맛비가 중부지방에 쏟아질 전망이다. 북한지방으로 북상했던 장마전선이 다시 남하하기 때문이다.

홍권삼·강찬수 기자, [전국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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