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선포하는 이승만. 그의 건국이상은 1949년 제창한 일민주의(一民主義) ‘4대 강령’에 잘 나타난다. “1. 경제상으로는 빈곤한 인민의 생활 정도를 높여 부요(富饒)하게 하여 누구나 동일한 복리를 누리게 할 것. 2. 정치상으로는 다대수 민중의 지위를 높여 누구나 상등계급의 대우를 받게 되도록할 것. 3. 남녀 동등의 주의를 실천해서 우리의 화복위안의 책임을 삼천만이 동일하게 분담하게 할 것. 4. 지역의 도별(道別)을 타파해서 동서남북을 물론하고 대한국민은 다 한 민족임을 표명할 것.” (사진 출처 : 건국대통령 이승만 박사 기념 사업회).
그때 이후 그는 이 땅에 미국을 모델로 기독교라는 종교적 토대 위에 민주주의가 구현되는 새로운 국가를 세우길 염원했다. “우리의 대의명분은 하나님과 인간의 법 앞에서 당당한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우리 민족을 일본의 군국주의적 전제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며, 우리의 목적은 아시아에 민주주의를 부식하는 것이며, 우리의 희망은 기독교를 보급시키는 것입니다.” 3·1운동이 터진 한 달 뒤인 1919년 4월 1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한인총대표회의’에서 결의한 ‘미국에의 호소문(An Appeal to America)’은 그의 건국이상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할 수 있는 데까지 미국의 정체를 모방한 정부를 세우기로 제의함. 앞으로 오는 10년 동안에는 필요한 경우를 따라서 권세를 정부로 더욱 집중함.” 그러나 다음 날 이 회의에서 채택한 ‘한국인의 목표와 희망’에 실린 건국의 ‘종지(宗旨, Cardinal Principle)’ 제2조는 건국 후 10년간 강력한 중앙집권적 통치체제 하에서 점진적으로 민권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생각을 담고 있었다.
1948년 5월 총선거를 맞아 그가 남긴 휘호 ‘방구명신(邦舊命新, 나라는 오래지만 명은 새롭다)’이 잘 말해주듯 그는 유교와 다른 전통종교의 장점을 아우르는 바탕 위에서 한국적인 기독교 국가 건설을 꿈꾸었다. 제헌국회 의장이었던 그는 1948년 7월 공포·발효된 헌법의 제정 과정에서 이 땅에 개인의 자유가 최대한 보장되는 민주주의 국가를 수립하되, 그 정부 형태를 ‘전제독주를 막을 수 없는’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를 택하도록 요구해 관철시켰다.
그가 귀천(歸天)한 지 45년이 흐른 오늘도 그의 군림(君臨)하는 제왕적 통치방식 때문에 치적에 대해서는 시시비비(是是非非)가 그치질 않는다. 그러나 민족의 광복에 큰 궤적을 남긴 불요불굴의 항일 독립투사였다는 역사적 사실에 토를 달 수 없듯이, 민주주의·평등주의·자본주의 등의 요소가 담긴 건국이상은 아직도 우리의 진로를 비추는 좌표로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것이다.
허동현 경희대 학부대학장·한국근현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