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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도 한번 웃겨봐야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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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깨달음과 저지름은 서로 왔다 갔다 하는 친구 사이다. 이성미가 드디어 오는 16일 밴쿠버행 비행기를 탄다는 소식을 접하고 느닷없이 오래된 연극 제목 하나가 툭 튀어나왔다. '엄마는 나이 오십에 바다를 발견했다'. 그녀는 나이 마흔셋(1959년생)에 강물이라도 발견한 걸까.

잘 나가던 연예 생활을 뒤로 하고 돌아올 기약도 없이 바다 건너 이국만리로 떠나는 여자의 심리상태는 무얼까. 그녀는 용감하다? (용기) 그녀는 미쳤다? (광기) 그녀는 철이 없다? (객기) 정답은 없다. 단지 그녀는 그녀답다는 것이다.

방송 생활을 청산하는 거냐고 물었다. "아이들(은기·은비·은별)과 함께 저도 공부 좀 하려고요." 한국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데…. "외국 사람도 한번 웃겨 봐야죠." 더 이상 무슨 해명(?)이 필요할까. 모성애와 자아실현의 욕구가 충돌을 피해 낳은 이성미식 묘수풀이로 보인다. "좋은 학교보다는 아이들에게 맞는 학교를 택할 겁니다." 그것 역시 지혜로운 판단이다.

직설화법으로 말하길 즐기는 양희은이 그녀에게 어느 날 야단치듯 말했다. "넌 왜 그렇게 시끄럽게 가니?" 떠나려면 떠들지 말고 조용히 가라는 말인데 도무지 서운하지가 않았다. 다짐이 느슨해지는 걸 막는 효과가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금연하려는 사람이 '나 담배 끊었어'라고 여기저기 선언하고 다니는 심정 비슷하지 않을까.

그녀는 기억력이 비상하다. 1980년 6월 5일 오후 2시 숭의음악당. 그녀가 세상에 처음 모습을 알린 때와 장소다. 대학(서울예대) 동기인 김은우가 도움이 필요하다고 해 창졸간에 선 무대(TBC 개그 콘테스트)였다. 당당히 대상을 받았다. 그로부터 22년이 무섭게 흘러갔으나 그녀의 얼굴이나 목소리는 2년2개월이 지났을 뿐이다.

어떻게 이렇게 안 늙을 수 있는가? "생각이 없어서죠." 아, 이 여자의 두번째 힘이 드디어 나왔다. 녹슬지 않는 순발력. PD들은 말한다. "밀리는 건 이성미의 성미가 아니다."

그녀의 개그 목표는 단순명료하다. '오버하지 말자'는 것이다. 단추 하나 풀어놓은 것 같은 여유면 충분하다는 게 그녀가 지키는 개그의 수위다. 그 적정선의 준수가 그녀를 20년 넘게 이 험한 바닥에서 지켜주었을 것이다.

그녀가 캐나다로 떠나면서 14년을 뭉쳐온 모임(늘푸른회)도 붕괴 위기란다. 그 사람들의 면모가 장난이 아니다. 원래 '성질 고약한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할까도 고민했다며 웃는다. "알고 보면 정에 굶주린 사람들의 모임이죠." 배 고파본 사람이 쌀의 소중함을 알듯이 정에 굶주려본 자만이 정의 소중함을 안다는 게 그녀의 확신에 찬 답이다.

동료 연예인이자 그 모임 회원이기도 한 주병진 사건 해결에 유달리 앞장섰던 이유가 궁금했다. "빚을 갚은 거죠. 제가 어려웠을 때 그가 제 일처럼 아파했거든요." 그러면서 덧붙인다. "어려워본 사람이 어려움을 알죠." 잠시 침묵이 흐른다. 심각한 건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그때부터 종교를 갖게 됐죠."

그녀의 세번째 힘. 신앙이다. 그녀는 지금 40일째 새벽기도를 다닌다고 했다. 이 여자의 기도 제목은 무얼까. "하나님의 예쁜 딸이 되겠다는 거죠." 그녀가 다시 새처럼 명랑해졌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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