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신'연재를 마치며]우리의 길이 여기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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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연재를 시작한 지 1년 만에 소설을 끝맺는다. 처음에 생각했던 구상의 80%만 소화하고 소설을 끝내는 느낌이다. 따라서 좀 아쉬운 느낌이 든다.

그렇게 된 큰 원인은 소설의 주인공이 장보고에서 김양으로 옮겨 버린 것 같은 불균형 때문일 것이다.

장보고를 증언해 줄 일본의 엔닌(圓仁)스님과 당나라의 시인 두목(杜牧)이 지면관계로 어쩔 수 없이 생략될 수밖에 없어 그런 결과가 생겼는데, 책으로 펴낼 때 그 부분을 수정한다면 처음 생각했던 대로 온전하게 복원될 것이다 .

최근 나는 KBS 다큐멘터리 제작팀과 더불어 '해신'을 5부작으로 만드느라 각국을 돌아다니고 있다.

내년 초 한국방송공사 창립 30주년 기념 작품으로 장보고의 해상 활동을 추적하는 이 다큐멘터리 덕에 이미 일본 전역을 여행한 데 이어 중국대륙을 1만㎞ 가까이 여행하고 있다.

조금 있으면 신라의 교역활동이 뻗어 나간 페르시아를 취재하기 위해 이라크와 터키·이집트도 여행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인물인 장보고를 형성화하는 소설 작업은 뜻하지 않게 다큐멘터리 작업으로 확대되고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장보고는 추적을 하면 할수록 우리나라 역사에서는 가장 독보적인 '세계인'이었다는 사실과 함께 그것을 넘어선 코스모폴리턴, 즉 '국제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1천2백년 전에 벌써 우리나라에서보다 중국과 일본에서 더 많은 존경과 인정을 받았던 세계인 장보고야말로 21세기에 우리가 나아가야할 민족성의 지향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뿐만 아니라 장보고는 우리나라 불교사상 대전환기였던 구산선문에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로서 선종 발전에 큰 기여를 한 종교 사상가이기도 하다.

그가 독실한 불교 신앙으로 해적을 소탕함으로써 노예해방에 앞장섰던 휴머니스트였음을 생각한다면 장보고가 보여준 세계인으로서의 역사관, 중국에 대사찰을 세우고 신라불교를 개혁하였던 종교 사상가로서의 철학관, 또한 노예해방을 실천하였던 인본주의자로서의 인생관을 통해 우리나라 역사상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지(知)·정(情)·의(意) 의 조화를 이룬 가장 뛰어난 전인적인 인물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따라서 부족한 부분은 책으로 펴낼 때 충분하게 보완이 될 것이며 책으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은 KBS의 영상을 통해 국민들에게 다가갈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들은 역사를 한갓 낡은 기록으로만 생각한다. 또한 천년 전의 일은 너무나 까마득하여 현재의 나하고는 전혀 상관없는 별개의 과거로만 여긴다.

하지만 역사는 단절된 것이 아니라 길고 긴 강물처럼 흘러가는 것이다.

오늘을 사는 우리도 내일의 눈으로 보면 역사의 일부분이 된다. 천년의 세월은 먼 과거의 일이 아니라 바로 오늘의 일인 것이다.

장보고. 그는 더 이상 과거의 인물이 아니다. 우리 민족이 반드시 나아가야 할 미래의 인물이다.

미래 지향적인 인물의 전범을 역사 속에서 발견해낸 사실에 대해 작가로서 나는 큰 자부심을 느낀다.

나는 젊은이들이 제2, 제3의 장보고로 성장해 주기를 소망한다. 그동안 애독해준 독자 여러분께 큰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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