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TOR’S LETTER]시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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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호 02면

숙수(熟手)의 손은 거침없고 정확했습니다. 꼭 만져야 할 곳에 꼭 필요한 만큼의 힘만 주었습니다. 그 손끝 아래서 아름다움이 하나 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14일부터 26일까지 서울 인사동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는 ‘2010 여름, 천공(天工)을 만나다’를 보러 갔습니다.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문화재청 후원으로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35명을 모시고 이들의 재주를 일반인 앞에서 펼쳐 보이도록 한 자리였습니다. 1층과 3층에 근사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고 구석구석에서 장인들이 숙련된 솜씨를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매년 한 차례 공개 시연이 있어왔지만 35명이 한꺼번에 모인 것은 처음이랍니다. 매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하루 두 차례 시연이 교대로 이어지죠.

16일 오전 3층에서는 올해 중요무형문화재 55호 소목장으로 인정된 박명배(사진) 선생이 느티나무로 서안(書案)을 만들고 계셨습니다. 판과 받침이 연결되는 부위. 끌을 사용해 정사각형으로 조금씩 파 들어가는 모습에서 “끌로 판다”가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게 결구라고, 못 대신 서로 이음을 맞추는 것이죠.”
“못을 안 쓰는 이유가 있나요.”
“우리나라는 계절이 뚜렷해 무더운 여름에는 나무가 늘어나고 춥고 건조한 겨울에는 줄어들죠. 못을 박으면 여름엔 뻑뻑하고 겨울엔 헐렁해지는 이유가 그 때문입니다.”
“그렇게 나무가 민감한가요. 그래도 못을 써야 할 때도 있을 텐데.”
“그럴 땐 대나무로 만든 못을 쓰지요. 같이 늘었다 줄 수 있는.”

못이 귀하기도 했거니와 선조들은 틈새가 안 맞는 미세한 차이까지 신경을 썼다는 걸 이제서야 알았습니다.
“결구는 모양이 하난가요.”

“허허, 기록으로만 100가지가 넘는데 변형된 것까지 따지면 헤아릴 수도 없죠.”
박 소목장이 모서리같이 생긴 부분을 뜯자 레고블록보다 정교한 이음새가 나타났습니다.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는, 하지만 절대 흔들리지 않도록 야무지게 맞물려 있는.
보이지 않는다고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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