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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도국에 유상원조 늘려야 하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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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첫째, 원조 확대의 부담이다. 우리나라는 실질국민총소득(GNI) 대비 ODA 비율을 2009년의 0.1%(8.2억 달러)에서 2015년에는 0.25%(32억 달러 추정)까지 네 배 정도 확대할 계획이다. 그러자면 국민과 기업의 조세 부담을 대폭 늘리거나 다른 부문의 살림살이를 줄여야 한다.

둘째, 나중에 자금을 상환받는 유상(有償)원조와 상환 의무 없이 제공하는 무상(無償)원조 간 재원 배분의 문제다. 일각에선 무작정 유상원조를 중단하자고 주장한다. 무상원조를 중심으로 지원하는 원조 공여국이 많다는 사실을 근거로 해서다. 그러나 유상원조와 무상원조의 효과에 대해 어느 쪽이 일방적으로 우월하다고 검증된 바가 없다. 1960년대 이후 대규모 개발차관을 통해 인프라를 구축했던 우리나라의 개발 역사에서도 알 수 있듯 유상원조는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촉진한다. 반면 무상원조는 인도적 지원을 통해 빈곤 감소에 직접 기여한다. 전체 원조의 절반을 유상원조로 지원하는 일본을 비롯해 프랑스·독일 등도 경제·사회 인프라 구축에 적합한 유상원조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 우리가 DAC 회원국이 됐다 해도 아직 1인당 소득 수준은 DAC 회원국 평균의 40% 수준에도 못 미친다. 그런데도 유상원조 비중이 전체 원조의 30%대밖에 안 되는 건 문제가 있다고 본다.

셋째, 원조에 대한 이상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원조를 통해 개도국의 빈곤 퇴치에 기여하면서도 다들 원조를 활용해 이익을 추구하는 게 현실이다. 외교·국방·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반대급부를 얻으려 한다. 예컨대 베트남의 지하철 건설 사업에 일본·프랑스·독일 등이 원조를 앞세워 자국 기업을 지원한다. 2009년 DAC 통계에 따르면 원조 모범국가인 핀란드·네덜란드·캐나다 등의 기업들이 최빈개도국(LDC)에서 높은 수주 비율을 보인다. 우리만 기업을 돕는 수단으로 원조자금을 활용하지 못하는 건 불합리하다.

이런 점들을 종합해 볼 때 향후 대외 원조정책은 유상원조 위주로 규모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무상원조는 기술 협력과 인도주의적 지원에, 유상원조는 대규모 재원이 소요되는 경제·사회 인프라 구축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개도국이 상생하는 길이기도 하다.

남기섭 한국수출입은행 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