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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 시평

새해 새출발 '대한민국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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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말 많고 탈 많았던 2004년 원숭이의 해가 가고 2005년 닭의 해가 밝았다. 많은 한국인은 보신각의 종소리를 들으며, 혹은 동해안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새해를 맞이한다. 프랑스 파리에선 가족이나 친구들과 와인을 한잔하고 폭죽이 수놓는 에펠탑에 모여 "좋은 한 해 되세요"라고 크게 외치며 축하한다. 독일 사람들은 친지들과 만찬을 즐기다 밤 12시가 되면 일순간 불을 꺼 한 해가 저물었음을 알렸다가 다시 불을 켜고 새해 인사를 나눈 뒤 폭죽을 터뜨리러 밖으로 나간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가족들이 함께 모여 녹두를 넣어 요리한 음식과 돼지 족발로 새해 음식을 차리고, 오스트리아에선 음악의 본고장답게 많은 사람이 신년음악회를 즐기며 새해를 맞이한다. 이렇게 새해맞이 풍습은 나라마다 다르지만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첫 발을 내딛는 것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다.

새해에 경제가 좋아져 자신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윤택해지길 기원하지 않는 이가 어디 있으랴. 한국 국민은 물론 한국에서 생활하는 외국인들의 한 가지 공통된 희망은 올해엔 한국의 경제 상황이 많이 좋아졌으면 하는 것이다. 지난 한 해 한국 경제의 결과가 좋았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지난 한 해 동안 수출 2000억달러 돌파, 최대 흑자 폭 경신, 외국인 투자유치 누적총액 1000억달러 돌파 등 긍정적인 뉴스도 많았지만 수출 품목의 양극화, 심각한 유가 변동, 지속적인 소비심리 둔화, 부동산 경기 저하, 청년 실업률 증가, 중소기업의 매출 감소, 식당의 휴.폐업률 증가 등으로 국민의 체감경기가 수년 만에 가장 나빴다.

한국이 지금 겪고 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정치.사회적인 갈등과 불안에서 온전히 기인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한국 내부의 갈등에 대한 내 개인적인 생각은 사실 꽤 긍정적인 편이다. 어떤 나라건 자국 내부의 불협화음과 갈등, 그리고 비판과 문제 제기가 항상 있으며 그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사회가 성숙하고 국민의식이 선진화돼 간다. 아무런 문제 제기와 충돌없이 일률적으로 돌아가는 사회는 오히려 건강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닐 수도 있다. 대부분의 유럽 국가가 200년에 가까운 세월을 보내고서야 어느 정도 성숙하고 자리를 잡은 민주주의와 자유를 누리고 있다.

한국은 지금까지 산업화.민주화.세계화를 향해 질주해 왔다. 한국은 가난과 전쟁의 피폐함에서 벗어나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눈부신 발전을 짧은 시간에 이룩한 나라다. 세계 역사상 30년 만에 최빈국에서 강대국으로 변모해 지구촌 곳곳에서 평화유지 활동과 의료봉사를 하고 구호물자를 제공하며 어려운 나라를 도와준 사례는 일찍이 없었다.

2005년 새해 한국 국민은 모두 '대한민국호'라는 큰 배를 타고 무한경쟁의 바다를 향해 새로운 항해를 막 시작했다. '대한민국호'는 비록 많은 내부 홍역을 앓고 있지만 훌륭한 선장과 승무원, 고성능 엔진과 프로펠러가 있다. 올해 한국은 경제 및 외교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일이 많다. 여러 국가와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미국의 제2기 부시 행정부와의 관계, 대북 경제 협력과 북핵 협상 등 국력을 모아 처리해야 할 문제가 얼마나 많은가. 나는 한국 국민 모두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분명 올해를 기점으로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있으리라 믿는다. 새해는 건전한 비평과 발전을 위한 갈등을 잘 승화시켜 한국 국민 모두가 다시 자신감을 찾고 세계 경제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장자크 그로하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소장

◆약력:프랑스 태생, 파리국제상업학교 졸업, 평양 체류, 북아시아컨설팅 사장(홍콩), 유럽.코리아재단 이사장, 주한유럽연합상공회의소 소장 및 북한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