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비평가 사비트 자다노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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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9·11 테러사태를 문명비평적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9·11은 문명적 경직성을 갖고 확대일로를 겪던 서구 기독교 문명의 근본을 뒤흔든 사건이다. 문명의 충돌로 보는 것이 과하다는 주장들도 있고 현재까지는 그렇게 보는 것이 옳다. 하지만 이 사태 후 세계는 심각한 반성 속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타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의 정신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최근 러시아에서 부활하고 있는 유라시아 주의가 서구문명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나.

"유라시아주의는 일종의 메시아주의다. 겉으로는 서양과 동양 양쪽의 모습을 모두 포괄하는 러시아가 독특한 위상과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을 깊이 들여다 보면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동로마=제2 로마)이 당시의 동방에서 온 야만세력에 몰락한 후 기독교적 정통성을 확보한 유일한 유럽대국 러시아가 제3의 로마가 돼야 한다는 것과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한마디로 러시아가 유럽의 구원 세력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의 유라시아주의는 매우 복잡한 모습을 보이지만 결국은 미국 위주, 기독교 문명 위주의 일방적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유럽 문명과 아시아 문명의 자양분을 골고루 흡수한 러시아가 새로운 문명적 대안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소련이 해체된 후 정신적 허탈감에 빠진 러시아에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반발작용이라고 볼 수도 있다."

-대표적인 유라시아주의자들의 이념과 지향점은 무엇인가.

"언어학자 트루베츠코이, 철학자 플로로프스키 등이 주장한 고전적 유라시아주의는 유라시아 지역에서 슬라브족을 비롯한 다양한 민족들 간의 상호연관과 문화적 융합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마디로 교향악의 악기들처럼 서로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는 최우선의 위치에 문화가 있고 이러한 문화가 구현하는 2차적 형태가 국가다.'영토''다인종 민족체''새로운 러시아 이데올로기'등의 이론적 발전을 이룩한 레프 구밀료프의 연구업적에는 다양한 대안문명으로서의 요소가 나온다. 소련 해체 후의 유라시아주의는 몇몇 이념가들과 정치세력인 '유라시아당' 등이 주로 강조한다. 푸틴의 국가주의나 공산주의 모두에 실망한 사람들이 빠져들 만한 요소가 분명히 있다. 하지만 이것이 과연 열린 지역주의로 나타날 수 있을지 아직은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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