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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따뜻한 개그계의 시인 신 동 엽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1면

그를 이해하는 데 실마리가 될 만한 두 개의 에피소드.

첫 장면은 가족이 모여 앉은 식탁이다. 막내 아들이 학교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일을 수선스레 이야기한다. 특이한 건 말과 표정뿐 아니라 수화로도 한다는 것. 옆에 앉아 있지만 듣지 못하는 맏형이 혹시라도 소외감을 느끼지 않도록 배려하는 아우의 독특한 전달방식이다.

둘째 장면은 스타와 열성 팬의 만남을 찍는 카메라 앞. 헤어지는 순간이 다가오자 팬이 왈칵 눈물을 보인다. 갑자기 들리는 연출자의 고함. "야 ! 울려면 카메라를 보고 울어야지." 그리고는 다시 한번 울어줄(?) 것을 요구한다. 이때 다가오는 스타의 단호한 표정. "어떻게 진실을 연기합니까 ?" 머쓱해진 제작진이 카메라를 철수한다.

그가 신동엽이다. 그를 움직이는 키워드는 '배려'다. "카메라 있을 때와 없을 때가 확연히 다른 사람을 보면 화가 납니다." 이 거룩한(?) 분노가 그를 십 년 넘도록 일급 방송인으로 지켜온 호신부(護身符)인 듯하다. 촬영이 끝나면 총총히 사라지는 게 대체로 본 연예인들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촬영이 끝난 후에 오히려 더 빛난다. 스태프뿐 아니라 함께 참여한 일반인들에게 반드시 따뜻한 말을 남기는 걸로 유명하다. 그가 현재 진행하는 두 프로그램 제목('해피 투게더''러브 하우스')은 그래서 그에게 썩 어울린다.

"안녕하시렵니까"라는 기이한 인사로 신인 개그맨 신동엽은 처음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다. "하늘땅 별땅 각개 별땅"식의 횡설수설형 코미디였지만 깃털처럼 가벼운 말들 속에 감추어진 비수를 눈치챈 사람도 없지 않았다. 말장난이 불장난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걸 그가 모를 리 없다. "세상을 비트는 일종의 안전장치였죠." 그의 진지한 해석에 수긍이 간다.

고등학교 시절 그는 나서서 남을 웃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그가 있는 곳에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모여드는 유형이었다. 재미난 이야기에 목마른 아이들에게 그는 늘 우물 같은 존재였다. 연극배우가 돼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무렵이었다.

그를 대학로의 무대가 아닌 TV에서 보게 된 건 어쩌면 준비된(?) 우연이었는지 모른다. 다니던 대학(서울예대) 축제에서 사회를 보는 모습을 본 방송 제작진의 강력한 권유로 당시 신생 방송사인 SBS에 특채된 게 개그맨 이력서의 첫줄이다.

일에 대한 그의 자긍심은 대단하다. 남들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자신이 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하고 보람있다고 확신한다. 이런 자아 존중감과 프로의식이 그를 오늘날 최고 액수의 출연료를 받도록 만든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가을부터 잠시 방송을 쉰다는 소문의 진상이 궁금했다. "좀 다른 모습을 보여주려 준비 중입니다." 아마도 심야에 방송되는 성인 시트콤이 될 것 같다며 기대감을 부추긴다.

이미 청춘 시트콤 '남자 셋 여자 셋'을 통해 시트콤 연기의 담금질을 마쳐서인지 표정에 자신감이 묻어난다. 연예계를 영영 떠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하자 "말도 안된다"며 손사래를 친다.

자리를 뜨기 전에 지나치듯 슬쩍 시인 신동엽(申東曄)을 아느냐고 물었다. 주저함 없이 시 한 편의 제목이 나온다. "껍데기는 가라" 그의 가벼운 행보에 왠지 알맹이가 꽉 찬 느낌이 들어 흐뭇했다.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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