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늘 대책 핵심은 신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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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2년 전에 끝난 중국산 마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협상을 둘러싼 파문이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정치권에서는 책임자에 대한 문책론이 비등해 당시 협상 책임자들이 물러나기에 이르렀으며, 농민단체들의 반발 역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사태의 재발을 막기 위해 파문의 원인을 살펴보고, 교훈과 수습책을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중국산 마늘 세이프가드와 관련, 일반인들이 간과하고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2000년 마늘 협상 당시 중국은 세계무역기구(WTO) 비회원국이었다는 점이다. WTO 회원국이었다면 중국의 극단적 보복조치나 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기로 하는 비밀 합의 모두 원천적으로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비회원국이었던 중국은 WTO 협정 준수 의무가 없다는 점을 최대한 이용, 우리의 유망 수출제품에 대해 극단적 보복조치를 발동함으로써 WTO 회원국이라면 당연한 권리인 마늘 세이프가드의 연장조치마저 행사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이끌어냈다. 이것은 당시 중국과의 통상관계에서 WTO법이 적용되지 못함으로써 부득이 외교적 협상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던 결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참고로 중국은 2001년 말 WTO에 가입함으로써 이후 한·중 통상문제는 WTO법에 따라 처리하게 된다.

다음으로 마늘 세이프가드 파문을 보면서 가장 아쉬운 것은 우리 정부의 대외통상 협상 수행에서 투명성 결여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마늘 협상 당시 중국은 WTO 비회원국이었을 뿐만 아니라 대한(對韓) 교역에서 50여억달러에 달하는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에 따라 우리의 대중(對中)협상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을 것이며, 세이프가드를 연장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주지 않으면 도저히 마늘 협상을 타결할 수 없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그런 협상 상황 및 결과를 누구보다 직접 이해당사자인 마늘 농가에 먼저 알리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다. 그래야만 농민들도 대책을 모색할 것이 아닌가. 더욱이 세이프가드는 연장을 신청할 수 있는 만큼 농업단체가 연장을 신청하리라는 것은 누구나 예견할 수 있었던 일임에도 그런 중요한 합의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은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셋째, WTO 협정에서 허용하는 세이프가드의 성격을 올바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세이프가드는 무역자유화의 결과 국내산업에 발생한 피해의 구제조치로, 무한정 존속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원칙적으로 4년, 연장 신청이 있는 경우에도 최초 적용기간을 포함해 8년까지만 존속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세이프가드는 경쟁력 강화와 구조조정을 위한 시간벌기일 뿐 영속적인 보호무역장치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번 마늘 세이프가드 파문은 어떻게 수습해야 할 것인가. 먼저 연장조치의 처리가 선결과제다. 중국과의 비밀합의는 정부간 약속이다. 아직 문건이 공표되지 않아 단언할 수는 없지만 알려진 바를 종합하면 단순한 정치적 약속이라기보다 법적 약속으로 봐야 할 것 같다. 따라서 국내적으로 연장 절차를 밟을 수는 있지만 실제로 연장 결정을 내릴 경우 국제적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연장 결정을 위해서는 중국과의 재협상이 불가피한데, 중국이 이에 응하리라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결국 세이프가드 연장이 어렵다면 마늘 농가에 대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다각적 방안이 모색돼야 할 것이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 연장되더라도 세이프가드는 잠정적인 것이기 때문에 마늘 농가의 경쟁력 강화나 구조조정을 위한 조치는 어떠한 경우에도 불가피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마늘 분쟁의 근원은 지난 우루과이라운드(UR) 농산물 관세 협상 당시 냉동 및 초산 마늘에 대한 섣부른 저율의 관세양허 약속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도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마늘 협상은 국익 차원에서 최선은 아니더라도 불가피한 선택이었음은 인정해야 한다. 다만 이번 합의 파문의 요체는 협상 결과의 중요한 사실을 국민에게 제대로 전달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는 국민으로부터 정부의 통상협상 능력이 아닌 신뢰에 대한 상실을 불러올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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