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대책 시장 반응:"그 밥에 그 나물" 무덤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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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정부의 증시 안정대책은 22일 주식시장에서 별 약효를 발휘하지 못했다.

이날 오전 정부의 대책발표 직후 한 때 주가하락폭이 줄어들기도 했지만 오후 들어 하락폭은 확대돼 전날보다 33.7포인트 떨어졌다.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별다른 대책도 없을 뿐더러 당분간 주가 상승을 기대할 만한 모멘텀(상승 요인)도 발견하기 힘들다는 전망 때문이었다.

증권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가 내놓은 대책은 그동안 주가 하락 때마다 내놓았던 대책을 재탕 삼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따라서 대책발표보다는 구체적인 실천의지가 중요하다고 이들은 지적했다.

메리츠투자자문 박종규 사장은 "연기금 주식투자 확충 등은 과거에도 정부가 지속적으로 내놓은 중장기 과제이기 때문에 정부 발표만으로 증시 안정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대책 발표보다는 기금운영자들이 주변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장기 투자할 수 있는 여건을 제도적으로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한 기금 운용자는 "월간 단위로 수익률을 따지는 환경에서는 장기 투자는 요원하다"며 "감사원과 국회가 이중으로 감사하는 마당에 투자위험이 높은 주식보다는 채권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또 A자산운용사의 관계자는 "이번 대책에 포함된 기업연금제 도입은 이미 수년 전부터 논의됐던 것"라며 "노동계의 반대로 지지부진한 것으로 알고 있는 데 임기 말에 직면한 이번 정권이 도입할 수 있을 지 의문"이라고 평가했다.

이 관계자는 또 "미국의 엔론사 도산으로 기업연금(401K)에 가입한 엔론 직원들이 퇴직금을 몽땅 날린 사건까지 발생한 마당에 정부가 노동계를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증권 전문가들은 정부가 이처럼 식상한 방안들을 내놓은 것은 정부가 주식시장을 안정시킬 만한 묘안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대우증권 홍성국 투자분석부장은 "현재 주가 급락은 국내 요인이 아닌 해외 요인에 의한 것인 만큼 정부의 대책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B투신운용의 관계자는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실질적인 증시 안정 방안은 세제혜택 뿐"이라며 "그러나 정부는 공적자금 손실분을 메우기 위해 세제혜택을 축소키로 결정한 만큼 이번에 세제혜택 방안을 내놓지 못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실행 의지에 대해서는 의문을 표시하면서도 방향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KTB자산운용 장인환 사장은 "주가부양을 위해 정부가 과거처럼 단기적인 대책을 내놓아봤자 별 효과도 없을 것"이라며 "중장기적인 대책을 꾸준히 밀고 나가 장기투자 풍토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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