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이래도 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제헌절을 보내면서 국회를 지켜보는 민심에는 조소(嘲笑)와 경멸이 넘쳐난다. 16대 후반기 임기가 시작됐는데도 의장을 뽑지 못해 식물 국회라는 오명이 쏟아진 게 지난주 초까지다.

40여일간 공백 끝에 원 구성을 끝내고 이젠 그동안 소홀히 했던 민생 문제에 달라붙는가 했다. 그런데 이런 기대와 달리 회기 중인데도 의원들은 대거 해외로 나갔다. 일부 상임위는 참석률이 떨어져 반신불수라는 비아냥이 들린다. 여기에다 연건평 1만7천평의 거대한 의원 회관이 좁다는 이유로 5백억원짜리 제2 의원회관 건립을 검토한다고 하니 계속되는 염치없음에 국민은 기가 막힐 정도다.

세계화 시대에 의원 외교는 확대·강화돼야 한다. 그런 점을 국민도 뒷받침해 줄 자세가 돼 있다. 문제는 의원 외교가 대체로 관광성 외유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다. 지난 15대 국회의 외교 활동 대부분도 관광과 시찰이나 하는 부실투성이였음이 경실련의 분석 결과에서도 확인됐다. 무엇보다 정쟁과 밥그릇 싸움 탓에 민생법안을 제때 처리하지 않아 국민만 골탕을 먹이고는 무더기 외유를 떠나니 뻔뻔하다는 느낌까지 주는 것이다.

국회의원 본연의 업무엔 이처럼 등한히 하면서 감투 챙기기와 나눠먹기, 잿밥 신경쓰기엔 이토록 신속할 수 있을까. 상임위 배치 과정에서 '물 좋다'는 건설교통위에 들어가려고 의원들은 맹렬한 경쟁을 벌였다. 반면 찬밥 신세인 환경노동위는 지원자가 적어 정원을 4명이나 줄였고, 그마나 민주당은 상임위 활동을 하기 힘든 국회 부의장·예결위원장 등을 배치했다. 전문성이 요구되고 민생과 직결된 환경과 노동정책을 제대로 다룰 수 있을지를 국민은 답답해 하는 것이다.

제헌절 기념사에서 박관용 국회의장은 "행정부가 제출한 법을 처리하는 통법부(通法府)라는 오명에서 벗어나 국회 위상을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민심과 시대 흐름을 여전히 따르지 못하는 국회가 몇번의 제헌절을 더 보내야 바로 설 것인가.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