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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과, 빌바오를 축으로 한 바스크 지역은 스페인에서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다. 스페인 내전이 끝나고 1939년부터 75년까지 프랑코 장군의 독재 아래서 카탈루냐와 바스크인들은 그들의 언어로 말하거나 출판하는 것을 금지당했다. 그들에게 스페인 국기는 파시스트의 상징이었다. 남아공 월드컵 우승을 확정지은 뒤 푸욜(바르셀로나)이 카탈루냐를 상징하는 깃발을 들고 세리머니를 펼친 것도 이 때문이다. 푸욜은 스페인 국기를 달고 뛰었지만 카탈루냐의 자치권 확대를 원하는 독립주의자다. 푸욜은 스페인어로 질문하는 기자나 사인을 요청하는 팬들을 모른 척하기로도 유명하다.
바르셀로나 유소년 팀에서 뛰었던 정인성(23·코리아이엠지 해외사업팀장)씨는 “마드리드 번호판을 부착한 차를 몰고 바르셀로나에 오면 파손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 레알 마드리드 유니폼을 입고 바르셀로나 시내를 돌아다니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은 기적을 만들어내고 있다.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지난 12일(한국시간) 스페인의 월드컵 우승을 자축하는 모습. 아래쪽에 스페인 국기가 보인다. 바르셀로나를 중심으로 하는 카탈루냐 지역은 독립 을 원하며 스페인 국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우승을 계기로 달라졌다. [바르셀로나 로이터=연합뉴스]
스페인 국왕 카를로스는 환영식장에서 선수들을 일일이 포옹하며 “여러분은 팀워크와 스포츠맨십의 상징”이라며 격려했다. 사파테로 총리는 “저 월드컵은 스페인이 합심해서 따낸 것”이라며 화합 쪽에 무게를 뒀다.
스페인의 카를레스 푸욜(오른쪽)이 우승 직후 카탈루냐기를 흔들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AFP=연합뉴스]
이런 점에서 비센테 델보스케 감독의 ‘탕평책’이 주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선수와 감독으로 영광을 누렸다. 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오로지 능력으로만 선수를 평가했다. 스페인 베스트 11 중 바르셀로나 출신은 무려 6~7명에 이른다. 5골로 팀 내 득점 1위를 한 다비드 비야, 결승전 결승골의 주인공 이니에스타, 미드필더 사비와 부스케츠 등이 맹활약해 스페인 언론은 “바르셀로나가 일궈낸 우승”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정씨는 “레알 마드리드 팬들은 바르셀로나 선수들이 스페인이라는 이름으로 뛰는 모습에 감동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팬 역시 친숙한 선수들의 활약 때문에 스페인 대표팀을 따뜻한 마음으로 바라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해묵은 갈등이 월드컵으로 단번에 해결될 수는 없다. 결승전 전날에도 바르셀로나에서는 자치권 확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다. 마드리드에 사는 로베르토 로페즈는 “아주 작은 마취제로 잠시 우리의 문제를 잊게 만든 것일 뿐”이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축구가 스페인 통합의 실마리를 제공한 것만은 분명하다. 민용태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명예교수는 “스페인은 오랫동안 지역 간 갈등으로 몸살을 앓아왔다. 월드컵 기간에도 통합과 갈등이 혼재했다. 하지만 두 가지 모습 중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월드컵을 계기로 통합의 기운이 싹텄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해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