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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규제, 장기적으로 이득” “규제와 성장은 상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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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주요 선진국과 국제기구에서 금융규제를 강화하기 위한 논의가 한창이다. 규제가 허술해 금융위기를 초래했다는 반성에서 새 금융질서가 모색되고 있는 것이다.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도 금융규제는 주요 의제 중 하나다. 이 회의에서 글로벌 차원의 합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중앙일보는 이와 관련된 논의를 정리하기 위해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과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 회장의 대담을 마련했다. 신 보좌관과 샌즈 회장은 12~13일 대전에서 국제통화기금(IMF)과 기획재정부 주최로 열린 아시아 콘퍼런스를 마치고 마주 앉았다. 신 보좌관은 정책 당국자 입장에서 규제의 필요성을 주로 역설했고, 샌즈 회장은 규제의 타깃인 업계의 고민을 전했다. 대담은 13일 오후 대전컨벤션센터에서 본지 김정수 경제전문기자의 사회로 진행됐다.

13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가운데)과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 회장(오른쪽)이 중앙일보 김정수 경제전문기자의 사회로 글로벌 금융 규제와 금융시장 안정 방안 등에 관해 대담하고 있다. [대전=김성태 프리랜서]

▶김정수 경제전문기자(사회)=글로벌 금융개혁 논의가 어느 정도까지 진전됐나.

▶신현송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은행의 위험 부담이 바람직한 수준을 넘어서면 대출 기준이 느슨해진다. 그래서 과잉 유동성이 생기고 이는 결국 과도한 성장으로 이어진다. 경기 사이클이 바뀌면 이런 게 부실자산이 된다. 경기가 정점에 있을 때, 은행은 자본에 비해 자산이 너무 많고, 자산에 비해 자본은 너무 적다. 부실자산은 결국 국민 부담이 될 수 있다. 금융위기는 미국과 일부 유럽 국가에서 발생했지만 한국도 영향을 받았다. 과잉 유동성은 한국에서 미분양 아파트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의 과잉으로 나타났다. G20은 바젤은행감독위원회(BCBS·이하 바젤위원회) 및 금융안정위원회(FSB)와 함께 장기적인 시각에서 은행 규제의 틀을 만들고 있다. 과도한 자산 증가를 막을 수 있도록 자기자본에 대한 규제를 도입하는 것과 위기가 와도 손실을 흡수할 수 있도록 자기자본을 충분히 쌓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여기엔 다양한 접근방법이 있다. 바젤위원회는 자기자본의 질과 양을 개선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자본의 질을 개선한다는 건 하이브리드 방식의 주식 대신에 보통주를 이용하도록 하는 것이다. ‘시스템상 중요한 금융기관(SIFI)’에 대한 규제와 감독을 강화하고 경기 순환에서 오는 영향을 흡수하는 완충자본제도 도입도 검토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은행세 도입을 추진 중이다. 최종 합의는 11월 G20 서울 정상회의에서 이뤄진다.

▶사회=그런 이슈들이 현재 어느 정도 합의가 되고 있나.

▶신=은행세의 경우 전 세계가 단일한 형태로 도입하지 않는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도입하고 싶은 국가는 최소한의 수준으로 할 것이다. 일련의 은행 규제 패키지 가운데 자기자본 규제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하지만 자기자본의 질과 양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해선 일부 이견이 있다. 유동성 규제는 합의 수준이 가장 낮다. 요약하면 자본 규제는 지지가 많지만 각론에선 의견이 갈리고, 레버리지 비율 규제가 그다음이며, 유동성 규제가 맨 마지막이다.

▶피터 샌즈 스탠다드차타드 회장=신 보좌관의 시각에 동의한다. 부실은행을 어떻게 처리할지에 관한 ‘정리(resolution)’ 이슈도 중요하다. G20 서울회의까지 합의할 필요가 있는 이슈는 자본, 유동성, 정리다. 은행세 따위의 핵심이 아닌 주변적인 이슈를 건드리면 외려 논점이 흐려진다.

▶사회=금융계의 입장은 잘 반영되고 있는지.

▶샌즈=바젤위원회·FSB와 건설적인 대화를 하고 있다. 갈수록 대화가 잘 풀린다. 다만, 은행세나 은행 쪼개기 같은 엉뚱한 얘기가 나오는 게 어려운 점이다. 그런 논의는 정책 당국자와 은행 간에 이견이 있을 뿐만 아니라 국가 간 정책 당국자끼리도 견해가 엇갈린다.

▶사회=핵심 의제에 대한 의견은. 금융개혁이 금융계와 글로벌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나.

▶샌즈=은행에 미치는 영향은 흥미있지만 중요하진 않다. 실물경제와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이 정말 중요하다. 금융개혁은 금융시스템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향후 위기가 와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일자리 창출과 실물경제 성장을 제대로 지원하는 금융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둘은 상충관계다. 최적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 위기 이후엔 성장보다 안전성을 지나치게 강조할 위험이 있다. 자신을 속이려 들지는 말아야 한다. 금융시스템을 안전하게 만드는 데엔 비용이 들어간다. 개혁을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안전성을 위해 어느 정도 비용을 치러야 할지는 알고 있어야 한다. 은행에 자기자본을 튼튼하게 쌓고 유동성 공급을 늘리라고 요구하면 은행이 공급하는 신용은 더 비싸진다. 신용이 비싸지면 경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사회=정책 당국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 같다.

▶샌즈=미시건전성 규제를 하지 말자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그것으로 모든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자신을 속이는 거다.

▶신=거시건전성 규제가 중요하다는 지적에 동의한다. 미시건전성 규제도 분명히 제 역할이 있다. 거시 규제를 위한 기본적인 틀이다.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이나 총부채상환비율(DTI)처럼 거시 규제와 보완적으로 쓸 수도 있다. 실물경제를 옥죌 정도로 너무 부담되게 규제를 도입해선 안 된다는 지적에 100% 동의한다. 그러나 금융규제의 단기적인 비용만 따지지 말고 안정된 금융시스템이 주는 장기적인 이득을 생각해야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금융위기로 치러야 했던 비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연구에 따르면 금융위기를 겪은 나라는 영구적인 흉터가 남는다고 한다.

▶샌즈=거기엔 동의한다. 하지만 금융위기를 무엇이 초래했는지 판단해야 한다. 그리스 위기는 거대한 금융위기지만 은행시스템 탓은 아니다. 갚을 능력보다 더 많이 빌린 공공부문이 문제였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에도 경제의 모든 섹터가 과도하게 레버리지를 썼기 때문에 사달이 났다. 은행은 그중의 한 부분이다. 과도했던 레버리지가 줄어드는 데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은행은 파티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웨이터처럼 너무 많이 신용을 나눠줬다.

▶신=그리스 위기에 은행시스템도 이차적으로 책임이 있다. 그리스 국채를 떠안고 있었던 건 유럽 은행이었다. 금융이 과도하게 레버리지를 일으키지 않으면서 적절한 중개기능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건 우리 모두 동의한다. 바젤위원회는 금융개혁을 위기 이후의 과도기적 조치로만 보는 게 아니라 장기적으로 이상적인 제도를 내놓으려 하고 있다. 쉬운 것만 하고 어려운 것은 뒤로 미루려는 유혹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장단기 처방을 한꺼번에 만들지 않으면 정치 현실 등을 감안할 때 나중엔 더 힘들어진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G20 회의에서 “위기를 낭비해선 안 된다”고 했다. 장기적인 개혁과제를 도입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다.

▶사회=추상적인 수준에서는 개혁이 지향하는 목표에 어느 정도 동의가 있는 것 같다. 모두 다, 심지어 규제 당국까지도 활력과 안정성 간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한다. 규제 도입 속도 등에서 어떻게 균형을 찾아야 하나.

▶신=규제가 가져오는 누적적인 효과를 수량적·정량적인 방식으로 따져볼 수 있다.

▶샌즈=금융개혁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어떤 당사자도 규제 도입의 결과를 정확히 알기 힘들다. 향후 몇 개월간 열린 토론을 해야 한다. 관점이 달라 토론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3~4년 안에 논의 중인 개혁안이 도입되면 한국 등 신흥국에는 어떤 영향이 있을 것 같나.

▶샌즈=균형을 얼마나 잘 잡느냐가 관건이다. 균형을 못 잡으면 금융시스템도 불안해지고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아시아 신흥국은 자본시장이 빈약해 은행에 더 많이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다. 신흥국은 국내 자본시장이 덜 발달한 탓에 국제적인 자본 흐름에 민감하다. 특히 걱정되는 것은 은행 규제로 국제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개별 국가의 금융시스템만 생각해선 안 된다.

▶신=몇 가지 점에서 동의하지 못한다. 한국은 1990년대 금융위기를 겪는 과정에서 은행 규제 시스템을 엄격하게 재정비했다. 새로 도입되는 규제를 따르는 게 그리 힘들지 않다. 우리 같은 신흥국이 많다. 새 규제는 금융부문이 상대적으로 큰 선진국에 부담이 될 것이다.

▶샌즈=아시아 은행과 규제 당국이 위기 대처를 잘한 것은 맞다. 최근의 금융위기는 본질적으로 서구의 위기였고, 아시아는 상대적으로 피해가 덜했다. 그렇다고 새 규제 도입을 너무 만만하게 보지 말아야 한다. 아시아는 달러 대출거래가 많기 때문에 영향을 받을 것이다.

▶사회=한국은 최근 금융위기의 주범도 아닌데 금융시스템이 취약해 그 충격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책은 없나. 얼마 전 발표한 외환 선물환 규제를 자본통제로 보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던데.

▶신=한국의 대외채권이 더 많은 나라고 미국 국채 매입을 통해 미 정부에도 돈을 빌려주고 있다. 하지만 한국의 은행들은 단기 달러 부채를 안고 있다. 선박수출이 많은 조선사는 미래에 들어올 달러를 은행과의 선물환 거래를 통해 헤지하고 은행은 이로 인한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단기 달러 부채를 떠안는 과정에서 생긴 특이한 구조다.

한국계 은행들의 지급능력은 우수하지만 유동성 부문이 아킬레스건이다. 6월 발표했던 선물환 대책은 이런 문제로 인해서 생기는 충격을 막기 위한 것이다. 자본 통제라기보다는 거시건전성 대책으로 보는 게 더 적절하다. 정책 처방 중의 하나일 뿐 이게 만병통치약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대전=서경호 기자
사진=김성태 프리랜서



◆신현송(50)=국제금융시장 전문가.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로 재직하다 지난해 말 청와대 국제경제보좌관으로 기용됐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모교 교수와 런던정경대(LSE) 교수를 거쳤다. 5년 동안 영국은행 고문을 지냈고 국제결제은행(BIS)에서도 일한 경험이 있다. 통화정책에 대한 그의 논문을 벤 버냉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인용하기도 했다.

◆피터 샌즈(48)=영국 옥스퍼드대를 졸업하고 하버드대에서 행정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정부의 해외 및 영연방 담당 사무소에서 일하다 1988년 컨설팅회사인 맥킨지로 옮겨 2000년 이사로 선임됐다. 2002년 5월 그룹 재무담당 이사로 스탠다드차타드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2006년 11월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돼 현재까지 그룹을 이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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