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로 보는 세상] 驕兵必敗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흉노의 잦은 공격에 시달려야 했던 중국 한(漢)나라 때 얘기다. 기원전 68년 지금의 신장(新疆)에 있는 차사(車師)라는 지역에 흉노가 쳐들어왔다. 선제(宣帝·BC91~BC49)가 조정 대신들을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 조충국(趙充國) 장군이 ‘즉각 군대를 파견해 반격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대신들의 의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승상이었던 위승(魏丞)이 ‘전쟁은 안 될 일’이라고 반박하고 나섰다. 반고(班固·AD 32~92)의 『한서(漢書)』 위상전(魏相傳)이 전하는 위승의 주장은 이랬다. “가뭄과 흉년, 그리고 관리들의 부정부패로 백성의 삶이 피폐했습니다. 지금은 내치에 힘써야지 차사와 같은 작은 지역에 연연해 전쟁을 일으킬 때가 아닙니다. 군대의 힘만 믿고 적에게 무력을 과시한다면, 이것이 곧 교만한 군대(驕兵)입니다. 군대가 교만해지면 반드시 재앙을 맞게 되는 법입니다(兵驕者災)”. 선제는 결국 위승의 주장을 받아들였고, 내치에 전념할 수 있었다.

이 고사(故事)에서 성어 ‘교병필패(驕兵必敗)’가 나왔다. 교만한 군대는 반드시 패한다는 뜻이다.

‘교병’의 반대말은 ‘애병(哀兵)’이다. 그러기에 ‘애병은 반드시 승리한다(哀兵必勝)’는 말이 쓰인다. 노자의 『도덕경』 69장에 뿌리를 둔 성어다.

“용병(用兵)에 있어 패배의 가장 큰 이유는 적을 깔보기 때문이다. 적을 경시하면 자국 군사의 손실을 볼 뿐이다. 전쟁을 함에 있어 양측의 전력이 비슷하다면 비통하고 슬퍼하는(哀) 측이 승리한다(兵相若, 則哀者勝).”

노장학(老莊學)의 시조로 불리는 위진시대 왕필(王弼·226~249)은 ‘哀’를 “서로 아끼고,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아 해로움을 피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병사가 받을 고통을 슬퍼하고, 적에게 당할 것을 우려해 섣불리 군대를 일으키지 않는 자가 결국 승리할 것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상 최대 실적을 갈아치우고 있는 삼성그룹이 ‘교병필패’를 새 화두로 던졌다. 자만하지 말자는 취지일 것이다. 지난 6월 7일 제시했던 ‘마불정제(馬不停蹄·달리는 말은 말발굽을 멈추지 않는다)’와 같은 흐름이다. 현재의 성과에 교만해 하거나 안주하지 않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달리는 삼성을 기대한다.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