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소비자 2년 법정투쟁 진실 밝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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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평범한 시민이 시민정신을 끈질기게 발휘해 거대은행을 상대로 약 2년에 걸쳐 항소심까지 가는 소송 끝에 승소해 손해를 배상받았다.

서울지법 민사항소1부(부장판사 李東明)는 15일 사업가 최윤식(50)씨가 국민은행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민은행은 崔씨에게 카드 장애에 대한 위자료 1백만원과 카드 오작동의 증거 확보를 위해 崔씨가 쓴 경비 75만8천원을 지급하라"는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崔씨는 승소 판결 직후 "법에 대해선 아무 것도 몰라 지난 2년간의 소송이 너무 힘들었지만 좋은 결과가 나와 기쁘다"면서 "고객이 가장 소중한 존재라는 걸 기업들이 되새기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崔씨는 2000년 8월 국민은행에서 발급받은 국내외 겸용 직불카드를 태국 출장길에 사용했으나 오작동으로 현금을 인출할 수 없어 왕복 항공료와 체재비, 현지 가이드비 등 6백여만원(崔씨 주장)만 날리고 귀국했다.

은으로 된 반지·목걸이 등 액세서리를 수입하는 崔씨는 해외 출장이 1년에 5~6차례나 돼 물품 구입 등에 쓸 해외용 직불카드가 반드시 필요했으나 이를 사용할 수 없어 큰 낭패를 봤던 것. 그러나 국민은행측은 당시 "카드 마그네틱이 손상된 것 같은데 그것은 개인 과실"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崔씨는 "가장 공신력이 큰 은행이 개인의 피해를 나몰라라 하는 데 기가 막혔다. 은행측으로부터 잘못했다는 사과를 들어야겠다는 생각에 소송을 냈다"고 말했다.

그러나 소송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청구금액이 소액이라 변호사를 선임하면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아 변호사의 도움도 포기했다. 崔씨는 혼자서 물어물어 소장을 내고 태국을 세 차례나 방문해 "'카드가 정상적으로 사용될 수 없다'는 영어문구만 반복해서 표시된다"는 방콕은행의 확인서를 증거로 법원에 제출했다. 10개월 동안 일곱 차례의 공판 때마다 출석해 억울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뜻밖에도 1심 결과는 패소였다. 방콕은행 확인서의 진위가 확실치 않다는 이유였다.

崔씨는 곧장 항소했다. 이번에는 방콕에 같이 갔던 친구까지 증인으로 출석시켰다. 또 국내에서는 정상적으로 작동하는데도 태국에서는 오작동한다는 증거를 다시 법원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이날 "崔씨 직불카드의 오작동은 제작 과정상의 과실로 인해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판결했다.

장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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