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해군기지 건립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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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한반도 남단 제주도에서 '해군 전략기지' 건립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지난 5월 기지 건립 구상이 처음 제기된 뒤 지난 6월 지방선거를 전후해 지역 쟁점으로 부상했다.

지난 11일에는 해군 당국이 남제주군 화순항 일대를 '전략기지'가 아닌 단순한 '해군부두'로 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주민과 시민·환경단체들은 본격적인 반대운동의 불을 지피고 나섰다.

◇불 붙은 논란=지난 5월 16일 제주항 부근 비로봉함 함상에서 해군이 주최한 토론회가 열렸다. 외교안보연구원 이서항 교수는 이날 "기동함대를 전개할 수 있는 전략기지를 건설해야만 국제자유도시인 제주의 안보와 해상위협으로부터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구축함을 비롯한 각종 전투함을 갖춰 기동작전이 가능한 '전략기동함대'는 지난해 3월 김대중 대통령이 해군사관학교 임관식에서 필요성을 밝힌 사안이다. 제주도가 전략기동함대의 구체적인 후보지로 처음 거론된 것이다.

이에 시민단체들은 우려 입장을 잇따라 밝히고 나섰다. 제주참여환경연대·제주환경운동연합 등 10여개 시민단체들은 "세계적 관광지를 지향하는 제주도로서 비핵화·비군사화는 필수적인데도 단 한차례의 공청회도 없이 기지 건립이 추진되고 있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시민단체 등은 단순 부두시설에 걸맞지 않게 6천억원이 넘는 거액이 투자되는 데다 부두를 이용하게 될 함대의 규모와 함정의 종류 등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자 '단순 부두 건립'이라는 설명에 의혹의 눈길을 보낸다.

특히 화순항은 일제 때부터 각종 군사시설이 밀집됐었고, 1980년대 말 군사기지 예정지로 지목돼 논란이 일었던 송악산 일대에 인접한 항만이어서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지난 6월 지방선거 때 지사 후보였던 우근민(禹瑾敏)지사도 "전략기동함대기지와 같은 군사시설 건립계획은 '평화의 섬'을 추구하는 제주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다"며 반대입장을 확실히 했다. 시민·환경단체들은 전략기지 계획이 무산될 때까지 반대 투쟁을 벌이겠다는 입장이며 도의회측도 별도의 청문회를 계획하고 있어 당분간 파문은 지속될 전망이다.

◇해군 입장=의혹·파문이 꼬리를 물자 해군은 지난 11일 윤연 기획관리참모부장(소장) 등 고위급 인사를 제주에 파견, 해명에 나섰다. '전략기지'가 아닌 '해군부두' 건립계획이 와전됐다는 것이다.

남제주군 안덕면 화순항에 건설 중인 민항 및 마리나부두와 연계한 군용 부두시설을 건립한다는 것이 해군의 입장이라는 설명이다. 1.5㎞ 구간에 접안시설을 설치하고 별도의 배후지 없이 부대시설은 매립지를 활용하겠다는 구체적인 계획도 일부 공개했다. 2006년부터 사업을 추진하고 6천2백억원의 예산을 투입한다는 복안도 밝혔다.

해군측은 이밖에 ▶해양분쟁 예상해역에서의 국익보호▶해상교통로 보호를 위한 국가안보 등도 부두 시설을 만드는 배경이라고 곁들여 설명했다. 화순항을 관광자원화가 가능한 경남 진해항과 유사한 군항으로 만든다는 것이 기본방침이라는 것이다.

해군은 제주도 측에 "부두시설이 들어서면 장병·가족 등 5천명 이상이 상주, 50억원 이상의 세수증대 효과는 물론 매년 1천억원 이상의 운영유지비가 집행돼 지역경제 파급 효과도 크다"며 부두 건립의 이점도 설명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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