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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휴직제 겉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경기도 안산 반월공단의 한 섬유업체에서 봉제 일을 하는 김인순(31)씨. 한달 전 남편과 사별한 그녀는 어린 두 남매를 두고 있고 현재 임신 5개월째지만 셋째 아이를 낳더라도 육아휴직을 하지 않을 생각이다. 1백만원 정도의 월급으로도 생계를 꾸려가기 빠듯한 마당에 육아휴직 지원금 20만원으로는 연년생인 둘째와 갓난아이의 우윳값도 부족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육아휴직을 선뜻 결정할 수 없는 더 큰 이유는 휴직기간이 끝난 뒤 복직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그녀는 털어놨다.

정부가 모성(母性)보호를 위해 지난해 말 관계법을 고쳐 육아휴직을 무급에서 유급으로 바꾸어 장려하고 있지만 제도 이용자는 기대한 것만큼 늘지 않고 있다.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출산 여성 근로자와 배우자는 최장 1년 동안 육아휴직을 할 수 있으며, 정부는 휴직기간 중 휴직자와 사업주에게 각각 한달에 20만원의 지원금을 주도록 돼 있다.

◇이용 실적 기대 이하=노동부는 14일 "올 상반기 육아휴직 이용자 수가 1천3백명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이는 무급이던 지난해 같은 기간(1천2백10명)에 비해선 다소 늘어났지만, 육아휴직을 유급으로 바꾸면서 정부가 예상했던 것보다 매우 적은 것이라고 노동계 관계자들은 지적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고용보험기금에서 육아휴직자에게 지급하는 육아휴직 급여액도 올 상반기까지 전체 예산의 1.8%인 5억4천4백만원에 그쳤다. 정부는 올해 최소 2만여명의 근로자가 육아휴직 제도를 활용할 것으로 예상하고 3백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원인=한국노총 강훈중 홍보국장은 "홍보가 부족한 데 1차적인 원인이 있다고 보지만 대부분의 경우 휴직 후 원직 복귀가 어려울 것이라는 고용 불안 때문에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LG산전의 한 여직원은 "지원금 규모가 휴직 전 임금 기준으로 50% 수준만 되더라도 이 제도를 이용하는 여성 근로자들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연구원 관계자는 고용 불안과 임금 문제 외에도 ▶법 개정으로 출산휴가가 60일에서 90일로 늘어난 데다▶동료들과의 경쟁에서 뒤지지 않으려는 여성들의 일 욕심에도 이유가 있다고 분석했다.

◇활성화 방안=노동부 여성정책과 김우동 서기관은 "우리보다 앞서 제도를 실시한 일본도 제도를 시행한 지 5년 정도 지나서야 이용자가 급증했다"며 "매스컴을 통한 홍보를 확대하고 사업장에 대한 지도점검을 강화하면 하반기부터는 이용자가 늘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육아휴직 기간에만 일할 대체 인력을 고용하는 기업에 장려금을 지급함으로써 육아휴직자의 고용 불안을 없애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선한승 노사정위 수석연구원은 "중장기적으로 휴직 지원금을 일본 수준(휴직 전 급여의 45% 수준)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임봉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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