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 부채 많아 혼쭐 팔 수 있는 건 다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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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영창악기 김재룡(44·사진)사장은 지난 2일 취임하면서 3년10개월 동안의 뼈아픈 구조조정을 잘 참아준 직원들에게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맑은 소리, 고운 소리' 영창피아노가 워크아웃(기업개선) 작업에 들어간 것은 1998년 9월. 외환위기 때 해외법인 설립 등에 5천만달러를 투자한 게 화근이었다.

"달러화 부채가 많았는데 환율이 뛰고 금리가 올라가면서 회사가 흔들렸죠. 모든 것을 던져가며 회사 살리기에 나섰습니다. 팔 수 있는 것은 다 팔았고, 줄일 수 있는 것은 모두 줄였습니다."

창업주 김재섭(78)회장의 외아들인 金사장은 당시 아버지가 물러나면서 구조조정의 악역을 맡았다.

미국을 제외한 해외법인·지사를 모두 매각했고, 인천에 있는 1공장 부지 3만7천평 중 1만평을 팔았다. 인근에 2공장을 지으려던 부지 2만7천평도 매각했다.

"임원은 저를 포함해 4명으로 줄였어요. 사외이사들도 봉급을 받지 않겠다고 했어요. 회사 차량은 대표이사용 한대만 남기고 모두 없앴습니다."

그가 특히 가슴 아파하는 것은 직원의 절반을 줄인 것. 매월 종업원대표 2백여명에게 직원 감축의 필요성을 역설해 2천명이 넘던 직원을 1천명으로 줄였다.

그러면서 피아노의 고가화를 추진했다. 제품 성능에는 자신이 있었다. 제값받기에 나서면서 내수와 수출가격을 매년 10% 안팎 올렸다.

여기에 힘입어 영창은 2000년부터 흑자로 돌아서 워크아웃 졸업에 성공한 것이다.

한국능률협회는 이런 성공사례를 인정해 영창을 기업개선 우수기업으로 선정했다.

"중국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어 전망이 좋습니다. 영창은 7년 전 이미 중국에 진출했거든요."

중국 시장은 매년 30% 이상씩 성장하고 있다. 영창은 톈진(天津)에 연간 3만대의 피아노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세웠다. 현재 24시간 3교대로 쉬지 않고 만들고 있다. 영창 브랜드는 중국에서 고급품으로 통한다.

"국내에서는 고가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연주회용 그랜드 피아노인 프램버거의 경우 한대 값이 1억원에 육박하는데도 연간 20대 정도 팔릴 정도로 전문 피아니스트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

미국 남가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한때 삼성물산에 근무하다가 93년부터 영창에 합류한 金사장은 "비온 뒤에 땅이 굳듯 이제부터 철저히 저비용·고효율 구조를 정착시켜 영창의 제2 전성기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김종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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