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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볼만한 계곡 피서지] 차디찬 물·시원한 숲속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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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8면

손꼽아 기다려온 여름 휴가, 산으로 바다로 떠나 일상사를 훌훌 털고 재충전할 기회다. 더위를 씻기에는 바다보다 계곡이 제격이다.

해수욕장도 좋지만 바닷물에 들어가 있을 때만 시원할 뿐 백사장에서는 뜨거운 햇볕을 피하기 어렵다. 반면 계곡은 차디찬 물이 흐르고 시원한 숲 그늘이 드리워 무더위를 잊은 채 대자연의 품에 안겨 쉬기에 안성맞춤이다. 산 좋고 물 맑은 계곡 피서지 다섯 곳을 소개한다.

◇매봉 중밭골(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조교리)=조교리는 버스조차 다니지 않는 오지로 매봉(800m), 바위산(858m), 매봉남봉(710m) 등 험준한 산으로 에워싸여 있고 서쪽으로는 소양호와 맞닿은 아늑한 마을이다. 이 마을 사람들은 굳이 피서를 갈 필요가 없다. 마을을 둘러싼 산자락마다 시원한 계곡이 펼쳐지는 까닭이다.

특히 매봉 서쪽 기슭을 흐르는 중밭골은 인적 드문 비경의 골짜기로 기암괴석과 맑은 못, 아담한 폭포수가 어우러지며 10리 가까이 이어지는 심산유곡이다. 계곡 피서를 즐기다 매봉 정상에 올라 발 아래로 드리운 소양호를 굽어보는 맛도 일품. 이곳의 또 다른 매력은 뱃길 여행도 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춘천 소양댐 나루에서 하루 두 번 다니는 여객선을 타고 호수의 낭만도 곁들이는 오지 계곡 탐방이 가슴을 설레게 한다. 민박집도 있어 숙식에 불편은 없다.

◇법수치계곡(강원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응복산(1,360m), 복용산(1,015m), 만월봉(1,281m)을 잇는 능선이 부챗살처럼 펼쳐진 가운데 백두대간의 첩첩산중을 돌고 돌아 남대천을 만난 뒤 동해로의 긴 여정을 준비하는 비경의 골짜기.

하류인 어성전 쪽으로는 넓은 시냇물이지만, 찻길이 끊어지는 곳에서 백두대간 준봉으로 치달아 올라가는 상류는 심산유곡 그 자체로서 숱한 지류가 가지를 치면서 이름조차 없는 비경의 폭포수들을 천태만상으로 빚어낸다. 피서를 즐기기에는 찻길 따라 이어지는 중하류 쪽이 좋다. 물놀이로 더위를 씻을 수 있음은 물론 맑은 물 속에는 다양한 어류들이 노닐어 낚시도 즐길 수 있다. 계곡 옆 소나무 숲에서 오토캠핑을 펼쳐도 좋고 민박을 이용해도 된다.

◇용하구곡(충청북도 제천시 덕산면 억수리)=월악산(1,093m) 동남쪽 기슭의 용하구곡(用夏九谷)은 이름 그대로 여름을 위한 계곡이다. 청벽대, 선미대, 자연대, 석운대, 수룡담, 우화굴, 세심폭, 활래담, 강서대 등 아홉 경승지가 구곡을 이룬 가운데 맑고 시원한 물이 콸콸 흘러 한여름 무더위는 절로 날아간다. 청벽대 입구부터 상류 쪽은 올해 말까지 자연휴식년제가 시행되어 출입할 수 없다는 게 아쉽지만 어차피 예전에도 그 위로 오르는 피서객은 드물었다.

민박집이 여럿 있고 숲속 야영장도 마련돼 알뜰 피서를 즐기기 좋다. 용하구곡 지류인 수문동계곡도 가볼 만하다. 수곡용담(용초폭포), 병풍폭포, 수문동폭포 등 시원스러운 폭포수가 이어진다. 특히 수문동폭포 아래에 뚫려 있는 천연 동굴은 한여름에도 으스스해 냉장고나 다름없고 수십 명이 들어갈 만큼 넓어 망중한에 빠져들기에 그만.

◇갈거리안계곡(전라북도 진안군 정천면 갈룡리)='전북의 지붕'으로 일컬어지는 운장산(1,126m) 지맥인 복두봉(1,017m) 남쪽 기슭에 이어진 20리 협곡으로 갈거계곡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온갖 산새와 길짐승, 우거진 초목들만이 적막산천을 노래했던 깊은 골짜기로 1970년경 올무에 걸려든 호랑이를 생포하기도 했다고 갈거 마을 주민들은 말한다.

믿거나 말거나. 그러나 이제 이 비경의 골짜기가 깊은 잠에서 깨어났다. 2000년 운장산 자연휴양림이 들어서면서 쾌적한 휴양지로 변모한 것. 샤워실 겸 화장실, 싱크대 등을 갖춘 콘도식 통나무집에서 일가족이 편안히 휴가를 즐길 수 있다.

50여 평 넓이의 못인 해기소, 협곡 깊이 숨은 정밀폭포 등 크고 작은 폭포와 못이 즐비하다. 주민들은 구봉교 아래 마당바위의 움푹 파인 곳을 공룡 발자국이라고 주장하지만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는 않았다.

◇구마동(경상북도 봉화군 소천면 고선리)=태백산 남쪽 깃대배기(1,370m) 기슭의 구마동은 현동천 상류의 오지 골짜기다. 하늘이 한 뼘도 안 보이는 적막강산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빽빽한 수풀과 맑디맑은 계류가 속삭일 뿐이다. 물을 그냥 마셔도 될 만큼 오염과는 거리가 멀다. 계곡 따라 작은 암자인 도화사까지 이어진 오솔길도 운치 만점.

명상하며 산책하기에 그만인 낙엽송 숲길도 있고 늘어지게 낮잠 자기에 좋은 넓은 잔디밭도 있다. 구마동 하류, 고선교에서 간기 마을에 이르는 약 11㎞의 현동천계곡(고선계곡)은 계곡 옆으로 좁으나마 찻길이 이어지고 민박집과 야영 공간도 있어 피서객이 제법 찾는다.

이곳에서 쉬는 것도 좋지만 웬만하면 간기 마을의 마지막 민박집에서 상류로 올라 구마동의 진수를 맛보도록 하자.

글·사진=신성순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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