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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作'그리려다 밋밋… 흐릿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는 건 용감하면서도 무모한 일이다. 12일 개봉하는 '아 유 레디?(R U READY?)'는 이런 생각이 들게 한다. 미답의 세계에 도전한다는 진취성은 박수치며 칭찬할 만하나, 제작진의 에너지를 한곳에 모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 '아 유 레디?'(감독 윤상호)는 준비(레디)가 더 필요한 영화로 판단된다. 순제작비 60억원(마케팅비 포함 80억원)을 들인 규모 있는 작품인 것은 분명하지만 객석을 휘어잡는 힘은 무척 달려 보인다. 의욕이 앞서고 성과는 따라주지 못한 꼴이다.

'아 유 레디?'는 한국 최초의 팬터지 어드벤처를 표방했다. '인디애나 존스''주만지''미라'처럼 모험과 액션이 가득한 환상극을 겨냥했다. 출연료 부담이 큰 스타급 배우 기용을 자제하고, 제작비의 대부분을 세트 건립·컴퓨터 그래픽에 투여하는 등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다.

드라마도 기대를 모았다. 전생과 현재의 만남이라는 윤회적 세계관을 바탕에 깔고 사랑하는 남녀의 정체성을 깔끔하게 처리한 '번지점프를 하다'(2001년)로 단숨에 스타급 작가가 된 고은님씨가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고씨는 많은 감독·작가들이 두번째 작품에선 실패한다는 '소포모어 콤플렉스'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 같다. 의욕이 넘쳐 얘기를 많이 풀어놓은 데 비해 이를 하나로 수렴하는 집중력이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아 유 레디?'의 무대는 디즈니랜드·에버랜드 같은 놀이공원(테마파크)이다.

사파리 공원에 들어갔던 여섯명의 주인공이 갑자기 곰의 습격을 받아 도망가기 시작한 후에 벌어지는 환상 같은 모험극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과거와 현재, 환영과 현실이란 대립항을 교묘히 섞어놓으며 이들 주인공이 각기 마음 속에 감추고 살았던 예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새 활력을 찾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경이 놀이공원인 데서 연상할 수 있듯 영화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빚어낸다. 여기에 스릴러 영화의 공포감까지 더했다. '그렸다'는 티가 종종 엿보이는 컴퓨터 그래픽이 아쉽지만, 그래도 신속한 장면 전환과 깊이감이 느껴지는 화면, 태국 현지 촬영 등 공들인 흔적이 역력하다.

조지 루커스 감독이 '스타워즈 에피소드2'에서 사용했던 대형 디지털 카메라를 실험적으로 도입했다는 기술적 도전도 주목된다.

그러나 '아 유 레디?'는 지난해 '무사'의 전철을 밟은 듯하다. '무사'는 아홉명의 고려인을 고루 조명하려다 얘기 자체가 산만해지며 실패한 케이스. '아 유 레디?'의 경우 '무사'만큼 심각한 정도는 아니나 출연진 여섯명을 균등하게 대우하려다 보니 각 캐릭터가 평면으로 가라앉고 그들을 연결하는 고리도 느슨해 보인다.

뜻밖의 돌발상황에 빠져들어가 베트남전 때의 비겁했던 행동을 상기하는 노인(안석환), 고교 시절 짝사랑했던 여학생으로부터 받은 수모 때문에 여성을 멸시하는 의사(김정학), 아들을 살리려고 출산시 자기 목숨을 포기한 엄마 때문에 남성에게 마음을 닫은 동물학 연구원(김보경), 곰인형에 집착하는 고아 소년(박준화), 어릴 적부터 견원지간으로 지낸 고교생 '날라리'(이종수)와 모범생(천정명) 등을 통해 영화는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역사·가족·이성·친구 등의 문제를 은유하려 했으나, 제한된 시간 탓에 목표했던 고지의 '8부 능선'에서 멈춰버린 것 같다.

사랑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번지점프를 하다'의 팬터지를 동서남북으로 확대하려 했으나 결과면에선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모양새다. 최근 개봉했던 '예스터데이'처럼 한국형 대작 영화의 '과유불급'(過猶不及)이 드러난다. 12세 관람가.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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