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임광행 보해양조㈜ 창업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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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지난 6일 오전 83세를 일기로 별세한 보해양조㈜의 창업자 임광행(廣幸)씨는 양조산업에 투신한 이후 장인정신과 원칙을 고수해 온 주류업계 1세대다. 호남에 기반을 둔 보해양조는 소주·매취순 등을 생산하는 중견 주류 제조업체다.

고인은 전남 무안군에서 태어나 목포상업전수학교를 마친 뒤 일본인의 잡화도매상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면서 장사와 경영을 배웠다. 그는 생전에 "당시 내가 장사를 제일 야무지게 잘 했고, 정직과 신용이란 좌우명을 배웠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주류 도매상을 거쳐 1950년 목포 양조장을 인수했다. 이후 어려움을 숱하게 겪으면서도 기업을 키워 지역경제와 양조산업의 발전에 일익을 담당했다. 68년 극심한 가뭄으로 술 소비가 크게 줄어 부도를 냈으나 8년8개월 만에 빚을 모두 갚고 재기했다.

전남 목포시 대안동 자택에서 노환으로 별세한 고인은 기업인으로서뿐 아니라 목포권, 나아가 전남 지역의 어른으로 존경받았다.

장형태(張炯泰·73) 전 전남지사는 "고인은 지역 일이라면 발벗고 나섰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많이 베푸셨다"며 애도했다. 또 고인에게 양조장을 넘겼고 평생을 가깝게 지낸 이훈동(勳東·85) 조선내화 명예회장은 "정이 많고 순박했으며 나이 들어서도 어른을 공경했다"고 회고했다.

고인은 81년 보해장학회를 만들어 그간 2천5백여명에게 총 22억원의 장학금을 줬다. 4년 전부터는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앞장서 1천5백여명에게 1억7천만원을 지원했다. 또 청각장애인 열명을 10여년째 보해양조 장성공장에서 일하게 했다.

그는 77년 청주 면허를 반납하고 전통 술에 관심을 돌렸다. 이듬해 매실주 개발에 성공했고, 이때 저장한 매실주가 88년 서울올림픽 때 10년산 매실주로 공개돼 호평을 받았다. 90년 첫 시판한 '매취순'에 얽힌 일화는 그의 사람됨과 경영철학을 잘 보여준다. 이 술이 큰 인기를 끌고 술집들이 물량 확보를 위해 혈안이 되자 회사 안팎에서 압력이 거세졌다. 숙성 기간을 줄여서라도 공급량을 늘리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고인은 "소비자와 처음 약속한 5년 숙성은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지켜야 한다"며 그 제안을 거들떠 보지도 않았다. 그 덕분에 이 술은 고품질의 명성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또 보해양조는 보해산업·보해주정·보해식품·보해매원·보해상호저축은행 등을 거느린 중견 기업군으로 성장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양녀(78)씨와 건우(보해양조 대표이사)·성우(보해주정 대표이사)·현우(보해식품 대표이사)씨 등 3남3녀가 있다. 발인은 9일 오전 9시 자택, 장지는 전남 무안군 삼향면 맥포리 선영.(061)242-5645.

목포=이해석·구두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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