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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히딩크의 나라에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대~한민국' 국민의 입장에서 이번 월드컵의 가장 큰 소득은 우리 모두가 자신감을 얻은 것에 있다는 데 국민 대부분이 동의할 것이다.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을 연파한 투지와 기량을 가질 수 있는 민족이라면 마음만 먹으면 축구뿐만 아니라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다는 이 자신감은 앞으로 우리가 통일된 국가로서 세계사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데 발판이 될 것이다.

과학의 역사에서 자신감으로 유명한 사람으로는 1930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인도의 라만을 들 수 있다. 빛은 반사·굴절·회절 등 여러 현상을 나타내지만 빛의 파장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라만 이전에는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파란색 빛을 쪼였더니 녹색 빛으로 바뀌어 나왔다면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유학을 꿈꾸었던 라만은 신체검사로 유학이 지연되자 차라리 잘 됐다는 생각으로 인도에 남기로 작정했다. 그러고는 열악한 인도의 연구 환경에서 후일 라만 효과로 알려진 빛의 파장 변화를 발견하고 아시아인으로 최초의 과학 부문 노벨상 수상자가 됐다.

그런데 유럽이 과학계를 거의 독차지하던 당시 과학계의 변방인 인도에서 독립적으로 연구 성과를 거둔 라만의 자신감을 드러내는 일화가 있다.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하기 전인 당시 노벨상 수상을 확신한 라만은 수상자 발표가 나기 몇달 전에 스웨덴행 배편을 예약하고는 그 사실을 공공연하게 발표했다. 웬만한 자신감과 배포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온 나라가 월드컵으로 들떠 있던 6월 한달 동안 세계무대에서 두뇌 대결을 벌이기 위해 착실히 준비를 갖추고 있던 20여명의 우리 젊은이들이 있다. 바로 국제 수학·과학올림피아드에서 미국·러시아·중국 등 강국 대표들과 겨룰 우리나라 대표 고등학생들이다. 바로 오늘 본격적인 시험이 시작되는 화학올림피아드를 시작으로 생물·수학·물리·정보올림피아드 순으로 흐뭇한 소식들을 전해 올 것이다. 더구나 올해에는 천문올림피아드도 처음으로 출전한다.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처음에는 과학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의 국가간 친목을 도모하기 위해 시작된 올림피아드가 경쟁이 과열되는 면도 있지만 우수한 고등학생들에게 심화 문제에 대비하면서 수학과 과학을 깊이있게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긍정적인 면도 무시할 수 없다. 더구나 우리나라 같이 중등교육이 황폐한 상황에서는 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재단이 지원하는 국제과학올림피아드 사업은 사막의 오아시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지금 우리 화학올림피아드 대표단은 히딩크의 나라 네덜란드에서 50여개 나라 대표들과 실력을 겨루고 있다. 멘델레예프를 배출한 러시아를 포함해 우리보다 저변이 훨씬 넓고 과학의 전통이 강한 나라들이 즐비하다. 이들 과학 대국의 대표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김민형·김용진·김인섭·이종혁 네명의 대표 학생들은 이번 주말에 반가운 소식을 전해줄 것이다. 이들의 선발·훈련·인솔을 책임진 나로서는 자신이 있다. 중국과 공동 1위를 차지했던 지난해 팀 못지않게 히딩크가 그처럼 강조했던 기초가 튼튼한 대표들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을 성원했던 열기를 잊지 말자. 그리고 앞으로 우리나라의 기초과학을 짊어질 젊은이들을 육성하는 일에도 국민적 관심을 기울이자. 체력이 국력인 것도 사실이지만, 21세기의 국력은 과학기술의 실력에서 가늠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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