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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부조리에 항거 허균은 혁명가였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2면

역적인가 실패한 혁명가인가. 『홍길동전』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허균(1569~1618)이 사후 약 4백년이 되는 오늘 '시대를 잘못 타고 태어난 예술가'이자 '제도의 악습을 고발하고 바꾸려 했던 혁명가'로 부활했다. 신간 『허균 평전』은 조선시대 광해군 시절 비운의 지식인 허균의 삶과 사상,그리고 예술을 일대기 형식으로 풀어냈다.

'허균 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 허경진(연세대 국문과)교수는 허균을 "시대를 앞선 개혁사상을 제시하고 유교의 예법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추구했지만 결국 파란만장한 일생을 비극적으로 끝낼 수밖에 없었던 지식인"으로 그려냈다.

허균에 푹 빠지기 시작했던 20여년 전에 비해 허교수는 허준을 보는 관점이 조금 달라졌다고 한다. 당대 조선인의 삶과 정서를 빼어나게 그려낸 탁월한 시인·소설가·비평가로만 보던 관점에서 시대의 한계에 도전한 혁명가로 다시 보게 되었다.

"조선시대 서얼 차별 등 신분제도의 불평등과 사회체제의 부조리를 비판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꾼 소설은 『홍길동전』 하나뿐"이라는 생각이 그런 판단의 첫번째 근거다. 그리고 허균이 쓴 또 다른 다섯 편의 한문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모습들을 합성하면 바로 홍길동의 모습이 된다고 저자는 밝힌다. 무엇보다 허균의 삶과 저작을 추적해 온 저자가 볼 때 허균이 바로 『홍길동전』의 주인공 홍길동 그 자체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며 피폐해진 백성의 삶과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지도층의 안일함과 부패를 허균은 직설적으로 줄기차게 고발해 왔다. 허균은 '호민론(豪民論)' '유재론(遺才論)'같은 논설에서 서얼 차별 등 각종 악습을 철폐하고 재능에 따라 인재를 등용할 것을 일관되게 주장하며, 부패가 시정되지 않을 경우 민중의 봉기가 일어날 것까지 경고해 왔다.

저자는 허균이 소설 장르에 관심을 보여 『홍길동전』을 집필한 것도 우연이 아닌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즉 보다 광범위한 호소력을 얻기 위해 의도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허균은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적지 않은 소설류를 사들여온 독자 중의 한명이었다. 더욱이 허균은 자신의 정치개혁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결국 자신이 홍길동이 되어 혁명을 준비했던 것이다.

주자학 중심의 조선사회에서 허균은 이례적으로 불교나 도교에 관한 글을 많이 썼다. 가장 치열하게 살다간 중국의 유학자로 손꼽히는 이탁오(1527~1602)의 삶에 허균을 비교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허균은 본인이 정2품 판서에까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두 형이 모두 대표적 유학자이자 행정가로서 당대에 손꼽히는 집안 출신이다. 기득권을 충분히 누릴 수도 있었던 그가 새로움을 꿈꾸었다는 점에서 그 삶의 파란만장함을 다시 보게 한다. 왕조실록 등에 실린 허균에 대한 기록은 온통 비난 투성이다. 하지만 유교시대가 아닌 오늘 꼭 유교의 관점에서 허균을 역적으로 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저자가 독자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저자 허교수는 『연암 박지원 소설집』 등 40여권의 한적(韓籍)을 한글로 옮기는 작업을 해왔다. 또 『교산 허균 시선』 등의 작업 이후 허균에 대한 관심을 지속적으로 보여왔다.

배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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