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이 전파를 이용해 무선으로 야마모토 제독의 순시 일정을 주고 받았던 것이다. 이를 니미츠 제독이 낚아채 암호를 해독했다. 니미츠 제독은 야마모토의 순시 길목을 지켜 격추시킬 수 있었다. 전파는 인류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지만 이처럼 암호를 허술하게 쓰면 통신 비밀이 지켜지지 않는다. 전쟁 때는 패하느냐, 승리하느냐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할 정도다.
무선 통신과 암호는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전파는 눈이 달려 있지 않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전파 송신탑에서 전파를 쏘면 360도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이 때문에 수신기는 미리 정해진 채널(주파수)을 열어 놓고 상대편이 이용하고 있는 전파를 잡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사람도 그 채널에 맞춰 놓기만 하면 같은 전파를 수신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니미츠 제독도 일본군이 사용하는 채널을 열어놓고 일본군과 동시에 통신 내용을 도청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암호만이 통신을 비밀스럽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지만 전파의 도청을 막는 것이 암호였다. 암호는 통신하려는 사람끼리만 아는 비밀통로가 있다. 이를 전파에 섞어 보내면 다른 사람이 설령 전파를 중간에서 도청했다고 해도 내용을 알아내기 어렵다. 도청자가 통신 내용을 알 수 있는 열쇠인 암호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암호가 중요한 이유다.
그러나 암호를 사용했다고 해도 남이 해독하기 쉬운 것을 쓰면 허사다. 만약 휴대전화도 암호가 잘 되어 있지 않다면 또 다른 사람이 도청하는 것은 여반장이다.
이제 전파 없는 세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시대가 됐다. 전파를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게 하는 자물쇠이자 열쇠 격인 암호와 안전하게 통신할 수 있는 방법에 관한 연구에도 힘을 쏟아야 할 때다.
김인석 경희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