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원 축제가 남긴 것>축제의 비판적 기능 제대로 살려보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중세 유럽에 '바보제(祭)'라는 축제가 있었다. 정월 초하루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징글맞은 가면을 쓰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경건한 사제와 근엄하기 이를 데 없는 귀족들에게 조소를 퍼붓고 교회나 궁정의 웅장한 예식을 조롱하기도 했다. 축제 기간에는 풍속이나 관례를 무시해도 상관없었으며, 당시 최고 권력자인 왕이나 주교를 야유하는 것까지 용납됐다.

아직도 핼로윈(Halloween)으로 그 흔적은 남아 있지만, 이 축제가 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근대가 등장하면서다.

파토스(감성)보다 로고스(이성)가 인간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인간의 욕구가 노동과 시장에 의해 재편되면서 이 축제는 사라졌다. 상상력을 가져다준 종교적 은유를 세속주의가 침식하고 문화의 창조성을 쇄락케 한 것이다.

이처럼 현대 사회의 정신적 빈곤을 축제의 상실로 설명한 하비 콕스 (하버드대)교수의 명저 『바보제』는 특히 축제의 사회비판적 기능에 주목한다.

'축제는 민중들에게 현재가 언제까지나 지금 그대로 지속해야 할 필요가 없음을 깨닫게 해준다'는 것이 그 요지다.

그가 1960년대 팝뮤직과 히피에 주목했던 것도 바로 이것들에서 사라진 축제의 부활을 보았기 때문이다.

콕스 교수에 따르면 축제가 이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은 바로 '고의적 과잉'때문이다. 평상시 억압됐던 감정이 축제 중에는 과장된 행위로 표현된다. 먹고, 마시고, 소리 지르고, 벗는 행위를 통해 새로운 상상력과 사회적 비판을 공유하고, 이를 통해 참여자들은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지난 한달, 우리의 응원열기도 '고의적 과잉'이 용인된 축제와 다름 없었다. 스스로 모여 연출한 감동과 희열이었다.

우리가 일상에서라면 '지나친 일'로 여겼을 짓도 거리낌없이 했고, 얼굴에 태극 스티커를 붙이고 감동을 과장해 표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그 고의적 과잉에서 냉혹한 현실로 돌아왔다. 과연 이번 축제가 콕스 교수가 설명한 것처럼 새로운 사회적 상상력과 비판을 제공했는가. 우리가 공유했던 것이 고작 축구공 애국주의만이 아니었다면 그것은 세계화와 어떻게 화해할 것이며, 서해 교전에서 난무한 포탄 속에서는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할까.

20대가 주도한 그 열기도 현실에 방관적인 소비문화와 무관하다고만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실험한 '자율적 공동체'라는 것도 그것이 시청 앞 광장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면 기존의 집단주의와 어떻게 다르고 현실 속에서 실현할 전략은 무엇인가.

현실로 돌아온 지금 우리는 이런 저런 문제들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런 의문에 대해 예전처럼 '반애국주의자'로 몰아가는 식의 과민 반응이 나올 수도 있는데, 그것은 또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까지 곰곰히 되씹어 볼 때다.

현실은 언제나 고단한 노동을 요구한다. 축제 없는 노동이 무의미한 것처럼 노동 없는 축제도 공허하다.

이번 축제 기간에 이뤄진 실험과 상상이 유의미한 것이라면, 의도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을 실현하는 데는 응원에서 보여준 것보다 더 치열한 노동이 필요할 것이다. 이를 회피하고 축제의 기억에만 매몰된다면 '지배자가 허용하는 시·공간내에서 이뤄지는 현실 망각과 체제 순응의 기제'라는, 축제에 대한 부정적 평가를 우리도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