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 50代 독자 4인 거리응원 체험기 "대~한민국"에 세대가 따로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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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축구를 좋아하는 그는 지난해 가을 인터넷에서 '어리버리 붉은앙마'란 동호회원들과 어울리면서 붉은 악마가 됐다. 한국팀의 일곱 경기는 물론 그 이전 평가전까지 십여차례 출정했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12시간 전에 도착해 땡볕 아래서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우리는 응원을 즐기러 거리로 나갔습니다. 경기장에 가면 경기에 빠져 응원에 전념하지 못할 수가 있거든요."

붉은 악마들만 모이던 거리 응원에 일반인들이 동참하고 언론의 관심이 커지면서 예상 못한 문제도 많았다고 崔군은 말한다.

"처음엔 응원에 열중하는 우리들에게 어른들이 '전광판이 안 보인다'며 욕을 하기도 했지만 나중엔 함께 열기에 빠져들었어요. 특히 경기 후 쓰레기를 치우는 우리 모습에서 오해를 씻은 듯합니다."

수십만명이 모인 지난달 29일 태극기에 옷핀을 꽂아 어깨를 드러낸 원피스를 걸친 그는 주변 남성들의 시선을 붙잡았다.

"함께 사진을 찍자"든가 자기 휴대전화 번호를 슬쩍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그는 "월드컵 뒤에는 파티할 때 이 옷을 입고 나갈 것"이라고 했다.

월드컵 이전에 축구를 전혀 몰랐던 申씨는 TV에서 거리 응원 장면을 보고 스페인과의 8강전(6월 22일)부터 친구들과 동참했다. 경기가 끝나면 지나가는 차를 잡아타고 신촌 등지로 나가 폭죽을 터뜨리며 축제를 즐겼다.

그는 "많은 사람과 함께 모여 춤을 추고 노래하고 뛰어다니는 게 정말 신이 났다"고 했다.

그러면서 잘 생긴 안정환을 포함한 우리 선수들의 투지와 그들이 벌이는 축구경기를 모두 좋아하게 됐고 애국심도 생겼다고 한다.

"대~한민국"을 외치던 그는 대학생 때인 1987년 6월을 떠올리며 "그땐 '독재타도'만 구호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때도 경찰은 시청 앞 광장의 시민들을 이렇게 에워쌌지요. 그때는 '적'이었는데 지금은 함께 질서를 지키는군요. 그땐 비장한 얼굴로 싸움을 하러 나왔었는데 지금은 모두들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즐거워하고요."

회사가 시청 근처인 그는 조별 첫 경기인 폴란드전 때 길거리 응원을 보고 동참했다. 빨간색 티셔츠를 장만했고, 금세 "대~한민국"을 따라 했다.

이후 다섯번 응원을 나갔다는 그는 "신세대들의 역동적이고 구김살 없는 모습에 감동했다"면서 "축구로 인한 한번의 격렬한 축제가 아니길 바란다"고 했다.

경기가 끝난 뒤 그는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오십 평생 이런 구경거리는 처음이야."

그는 응원단과 떨어진 잔디밭 구석에 돗자리를 깔아놓고 부인 주정자(46)씨와 통닭을 뜯었다. 이어 경기가 시작되자 익숙하게 '대~한민국'구호를 외치고 박수를 쳤다.

부부는 포르투갈전이 열렸던 지난 14일 버스로 10여분 거리인 집(서교동)에서 평화의 공원에 그냥 놀러왔다가 응원군중을 맞닥뜨렸고, 재미에 빠져 거리 응원단이 됐다. 나올때 마다 아들이 사준 붉은 악마 셔츠를 입었다.

"신나게 놀고나서 청소하는 걸 보면 요즘 젊은이들 참 기특합니다. 이기적이고 애국심이라는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어요."

그는 "뒤풀이는 젊은이들 몫"이라며 경기가 끝나자 곧바로 귀가했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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