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이 쫓아가기 어려울 정도로 역습 빨랐다, 이게 바로 현대축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8강전에 나섰던 정해상 부심. [AFP=연합뉴스]

지난 2일(한국시간) 열린 남아공 월드컵 8강전 브라질-네덜란드전. 전반 8분 브라질 다니 아우베스(바르셀로나)의 패스를 받은 호비뉴(산투스)가 네덜란드의 골망을 흔들었다. 그러나 제2부심은 주저 없이 깃발을 들었다. 간발의 차였지만 오프사이드가 확실했다. 전반전 많은 찬스에도 1골에 그친 브라질은 결국 후반전 상대에게 반격 기회를 줘 1-2로 역전패했다. 유력한 우승 후보 브라질은 이렇게 탈락했다.

당시 제2부심은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이번 대회 심판으로 참가한 정해상(39) 심판이었다. 10일 국제축구연맹(FIFA) 심판 숙소에서 만난 정 심판은 한 달 넘게 짊어진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한 표정이었다. 그는 오심 때문에 말이 많았던 이번 대회에서 월드컵 데뷔전을 무사히 치러 냈다.

◆오심 여파 전전긍긍=16강전에서 연이어 터진 오심은 월드컵 심판들에겐 재앙과도 같았다. 이번 대회에는 주·부심 29개 조(주심 1·부심 2명)가 참가했지만 조별리그가 끝나고 10개 조가 오심 등의 이유로 사실상 퇴출당했다.

정 심판은 “브라질-네덜란드전을 맡으라는 통보를 받고 부담이 컸다. 8강전 첫 경기인 데다 강팀끼리 붙는 빅매치였다. FIFA에서도 가장 치열하고 거친 경기가 될 것이라 예상하고 있었다”고 회상했다. 다행히 경기 후 평가 자리에서 칭찬이 쏟아졌다. 정 심판은 이번 대회 조별리그 3경기와 8강전 등 부심으로 총 4경기에 나섰다. 역대 월드컵에 나간 한국 심판 중 가장 많은 경기를 담당했다.

◆외로운 직업=월드컵 심판들의 숙소는 프리토리아 외곽의 인적이 드문 곳에 있다. 임대용 고급 주택단지를 통째로 빌려 사실상 격리 수용돼 있다. 경찰 수십 명이 철통같이 지키는 숙소는 비포장도로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야 한다.

외롭고 부담되는 직업이지만 금전적인 대가는 큰 편이다. 월드컵 심판으로 확정되면 5만 달러의 보너스를 받는다. 출전 경기 때 추가로 받는 돈은 없다. 일당은 150달러씩 지급된다. 40일 이상 남아공에 체류한 정 심판은 5만6000달러(약 6700만원) 정도를 번 셈이다.

정 심판은 비디오 판독 등 과학적인 판정 기법 도입에 긍정적이다. 그는 “심판의 신용도를 높여 준다면 괜찮다고 본다. 양쪽 골라인에 부심을 추가로 세우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했다.

◆심판이 본 월드컵=축구선수 출신인 정 심판은 이번 대회에서 각 팀의 역습 속도와 공간을 주지 않는 지역방어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는 “많은 골이 역습을 통해 나왔다. 부심이 따라가기 어려울 정도로 역습의 속도가 빨랐다. 선수 전원의 운동량이 늘어난 현대축구의 흐름을 반영하는 것 같다”고 평했다.

한국 팀에 대해 정 심판은 “우루과이와 16강전을 담당한 볼프강 슈타르크(독일) 주심이 한국의 빠른 공격에 무척 놀랐다. 하지만 너무 공중볼에 의존하는 패턴은 고쳐야 할 점이라고 충고했다”고 전했다. 정 심판은 이어 “한국의 역습 템포는 세계적인 팀에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지역방어 전술 소화 능력에서 아직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프리토리아=장치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