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학번 '전교조 세대'의 후일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5면

제목에도 언급돼 있듯 이 소설의 주인공 양다인은 71년생이자 90학번인 여성이다. 일정한 경험과 의식을 공유하는 젊은층을 세대담론으로 구획짓기 좋아하는 한국사회에서 이들은 '전교조 세대'로 불렸다.

그러나 그 명칭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그 앞 세대인 386세대나 그 뒤의 소비지향적 X세대(혹은 신세대)와 비교하면 더욱 그렇다.

소설은 낀 세대 혹은 잊혀진 세대로서 90년대 초반에 대학을 다닌 이들의 기억을 떠올리는 일종의 후일담 문학이다. 주인공은 고교시절부터 의식화(?)돼 있었고 대학에서는 학생운동에 전념하고, 졸업 후에는 시민운동에 몰두한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아버지·어머니·동생·친구 등의 눈을 통해 화자를 바꿔가며 묘사되고 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이 소설은 후일담 문학이 지니고 있는 감정의 과장에서 벗어나려 한다. 또 입심 넘치는 작가의 소설 어법, 마치 막말 하는 듯한 문체는 그대로 살아 있다.

주인공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80년대 선배 학번들로부터는 학생운동을 흉내내는 후배 정도로, 주변 사람들로부터는 세월이 좋아졌는데 괜히 데모나 하는 이해할 수 없는 아이들"로 밖에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시대착오적'으로 보일 정도로 왜 한총련을 꺼내들며 이런 인물을 그리고 있는 것일까. 아마도 그것은 민족·통일·평등과 같은 거대담론을 의식적으로 망각케 하는 어떤 시대분위기에 대해 딴지를 걸고 싶은 작가의 심정 때문이었을 것이다. 작가 자신도 주인공과 같은 나이 같은 학번이다.

한 인간이 분열되지 않고 존재할 수 있는 근거는 자기 동일성을 어떻게 유지하느냐에 달려 있다. 자기동일성 유지는 바로 기억의 문제다. 이 소설은 젊은 시절의 어떤 기억에 대해 "잊어라, 버려라, 달라져라"하는 소비사회의 세태에 대한 도전이다.

그러나 이 소설은 세계와 자아가 맞부닥치며 일어나는 자아의 갈등과 내면적 고민을 그려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어떤 주장과 과거를 설명하고 해석하려 할 뿐 새로운 메시지를 생산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한계가 노출된다. 작가는 『경찰서여, 안녕』을 통해 재기발랄한 이야기꾼으로 주목받았으며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희곡 부문에 당선됐다.

우상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