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응원문화 가르쳐 준 조국에 감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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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한국이 4강에 올라간 걸 이변이라고들 하는데 그건 절대 아닙니다. 실력으로 따냈는데 자꾸 이변이니 기적이니 하고 말하면 유럽 사람들의 논리에 말려들게 됩니다."

2002 한·일 월드컵 요코하마(橫濱) 메인프레스센터에서 한국어·프랑스어 통역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재일동포 김복식(50·여)씨.

金씨는 "아시아 대륙에서 처음 열린 월드컵이니 여건상 우리가 유리했던 건 사실이고, 역대 월드컵에서 개최국은 항상 좋은 성적을 올렸다"며 월드컵 신화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오사카(大阪)외국어대에서 프랑스어를 전공한 그는 프랑스에 유학, 불어학과 외국어 교습법을 공부했다. 그는 "축구를 직접 해본 건 고교 시절 체육시간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전문가도 놀랄 만큼 축구에 대한 깊은 식견과 애정을 갖고 있었다.

한국-이탈리아전이 열리던 날 그는 이렇게 말했다.

"토티하고 비에리가 사이가 좋지 않다지요. 개인 능력에 비해 팀워크가 탄탄하지 않은 이탈리아의 약점을 파고들면 우리에게 승산이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선전에 대해 외국 기자들은 모두 놀랐고,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고 했다. 중국 언론의 악의적인 보도에 대해선 "그렇게 배가 아프면 중국도 훗날 월드컵을 유치해 보라고 하라"고 목청을 높였다.

"만에 하나 한국이 홈의 이점을 약간 더 누렸다면 수백만명이 거리에서 열광적이고 질서있게 응원하는 모습을 본 국제축구연맹(FIFA)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일 겁니다."

자원봉사자로 일하는 바람에 경기장에 가지 못해 아쉬웠다는 金씨는 세네갈의 디우프, 카메룬의 에토오 등 아프리카 선수들의 플레이에서 예술성을 느꼈다고 했다. 북유럽의 축구는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너무 기계적이라 싫다고도 했다.

"축구 응원이 훌리건 난동 같은 폭력적 양상이 아니라 즐거운 축제가 될 수 있음을 이번 월드컵은 보여주었습니다. 축구 선진국이라는 유럽 사람들에게 이런 아름다운 응원 문화를 가르쳐준 한국 국민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金씨는 조국에 대한 무한한 긍지와 사랑을 안고 살아갈 것이라며 어깨를 폈다.

요코하마=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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