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맹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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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판 '국기에 대한 맹세'에 대해 26일 위헌판결이 내려졌다 해서 미국 조야가 떠들썩하다. 샌프란시스코 항소법원이 "충성맹세 문구 중 '하나님 아래'라는 구절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한다는 헌법조항에 어긋난다"고 판시했다는 것이다.

국가주의 냄새가 풍기는 각종 '충성' 문구라면 한국인은 이골이 나 있다. 일찍이 자유당 시절에 학생들은 '우리는 대한의 아들딸 죽음으로써 나라를 지키자. 우리는 강철같이 단결하여 공산침략자를 쳐부수자. 우리는 백두산 영봉에 태극기 날리고 남북통일 완수하자'는 '우리의 맹세'를 외워야 했다. 그 시절 발간된 서적들 맨 뒤에는 예외없이 맹세문이 인쇄돼 있었다.

박정희 정권 때인 1972년 8월 문교부(현 교육부)는 전국의 학교에 '국기에 대한 맹세'를 내려보내 암기하게 했다. 전두환 정권이 들어선 80년 10월에는 "국기에 경례할 때는 국기에 대한 맹세도 병행해 실시하라"는 지침이 떨어졌다. 72년은 유신헌법이 생긴 해고, 80년 가을에는 온국민이 공포와 체념에 젖어 있었다. 유신시절 한국인은 오후 5시 확성기에서 흘러나오는 애국가와 '나는 자랑스런 태극기 앞에 조국과 민족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는 맹세 소리에 가던 걸음도 멈추고, 드잡이하던 손을 놓고, 장바닥 흥정까지 중단했다. 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려 해도 애국가와 태극기·맹세문에 대한 '사전신고'가 필수였다.

국기하강식이나 각종 행사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낭독을 생략해도 탈이 없게끔 규정이 바뀐 것은 96년 들어서였다. 그리고 6년 뒤, 월드컵 대회를 개최한 한국민은 태극무늬를 얼굴이나 팔에 새기고 태극기로 두건과 바지·치마를 만들어 입을 정도로 변했다. 태극기를 소재로 한 '즐거운 불경(敬)'을 통해 우리 국민은 보다 자유롭고 자발적인 방식으로 국기와 나라에 대한 사랑을 표현할 줄 알게 됐다고 본다.

미국 법원의 이번 판결은 종교 문제가 끼여 있어 사정이 좀더 복잡하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법원 판결에 대해 "어리석은 짓"이라고 비난했고, 상·하원 의원들도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판결을 탓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애국주의의 파고(波高)가 부쩍 높아진 미국이라 사태의 귀추에 더욱 관심이 간다.

노재현 국제부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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