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방지위의 인권침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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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부패방지위원회(부방위)가 공개 고발했던 장관급 등 전·현직 고위 공직자 세 명에 대해 검찰이 무혐의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욕적으로 처리했던 '첫 작품'이 무혐의 처리됐다는 점에서 부방위는 명예와 공신력에 커다란 구멍이 뚫리게 됐다.

부방위가 출범 두달 만에 검찰에 고발한 세 명은 '헌법기관에 종사하는 현직 장관급 한 명과 사정기관에 소속된 두 명의 전·현직 고위 간부'라는 발표 내용만으로도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부방위위원장은 기자회견에서 장관급 공직자는 인사청탁과 관련해 1996년부터 2001년까지 부하 직원에게서 뇌물·향응을 받은 혐의라고 공개했다. 또 사정기관 간부는 이해 관계자에게서 1주일에 두세번씩 상습적으로 금품·향응을 받고 수천만원의 뇌물을 상납했다고 밝혔다. 공직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파렴치한 내용이어서 결코 용납받기 힘든 혐의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을 조사한 검찰은 세 명 모두 무혐의 결정했다. 발표된 혐의내용이 대부분 사실과 다르고 일부는 공소시효가 지났거나 과장된 내용으로 처벌 대상이 안된다는 이유다. 같은 사건에 대해 불과 석달 사이 두 기관의 결론이 이처럼 상반되니 참으로 헷갈리고 혼란스럽다.

우리는 부방위의 고발 발표 당시 확인되지 않은 공개 고발은 문제가 있음을 지적한 바 있다(4월 1일자 2면). 부방위는 신고인과 참고인 조사권밖에 없기 때문에 혐의 내용이 일방적 주장 상태여서 수사 결과 뒤집힐 우려가 있고 이럴 경우 당사자들에게 치명적인 피해가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무혐의 결정은 결국 우려가 현실로 나타난 셈이다. 아직 부방위의 재정신청 등 절차가 남아있지만 검찰이 부방위 고발을 받아 양측 당사자를 모두 조사하고 내린 결정인 만큼 현재로서는 믿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물론 부방위 측은 반쪽 조사권에 검찰의 '자기 식구 봐주기 수사' 등 불평불만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경우에도 국가기관이 기본권 침해에 앞장서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검증·확인되지 않은 혐의 사실을 발표부터 하고 고발하는 것은 우선 순서가 뒤바뀐 행정 아닌가. 자칫 국가기관 사이의 비뚤어진 경쟁이나 권력다툼이란 오해를 부를 수도 있다.

부방위의 권력기관 공직자 정화 업무는 무엇보다 중요하다. 어떤 경우에도 부패방지 기능이 위축돼서는 안된다. 그러나 중요한 업무일수록 당사자에게 회복 불가능한 치명타를 입힌다는 점에서 시행착오는 금물이다. 부방위의 보다 신중한 업무 처리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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