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 오일뱅크 되찾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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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현대오일뱅크 경영권을 둘러싼 현대중공업과 아랍에미리트의 아부다비 국영석유투자회사(IPIC) 간 소송에서 법원이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해 국제중재재판에 이어 국내 재판에서도 이긴 현대중공업은 이달 중 현대오일뱅크 지분 매입을 통해 경영권 확보에 나설 계획이다. 1999년 말 현대오일뱅크(당시 현대정유)를 IPIC에 넘긴 이래 11년 만에 회사를 되찾겠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0부(부장 장재윤)는 9일 현대중공업 측이 IPIC와 자회사인 하노칼을 상대로 낸 ‘중재 판정에 대한 집행판결 청구소송’에서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현대중공업 등에 매각하게 한 국제중재판정의 집행을 허가한다”며 원고(현대중공업) 승소 판결을 했다. 현대중공업 측에는 이번 판결의 가집행을 허가했다.

1심 판결이지만 ‘IPIC는 현대중공업에 주식 전량을 매각해야 한다’는 지난해 11월 국제중재재판소의 판정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어서 최종심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관측된다. IPIC 측은 “법원의 판결문 내용을 신중히 검토한 후 항소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오일뱅크 지분은 IPIC가 70%, 현대중공업(21.1%) 등 현대 측이 30%를 갖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현대오일뱅크를 인수하면 지난해 말 현대종합상사에 이어 남의 손에 넘겼던 현대의 주요 계열사를 되찾는 셈이다. 고 정주영 회장 시절 32세의 나이에 현대정유 대표가 됐지만 IPIC에 회사를 넘기고 은신하다 현대종합상사 인수와 함께 경영 일선에 나선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의 행보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IPIC는 99년 말 현대오일뱅크 지분 50%를 5억 달러(당시 6127억원)에 사들였다. 현대중공업과 IPIC는 2003년 계약을 수정해 IPIC가 배당금 형태로 2억 달러를 가져갈 때까지 현대 측은 배당을 받지 않고, 경영에도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오일뱅크의 경영은 예상보다 빨리 좋아져 IPIC는 2003년의 계약에 근거해 2006년 지분을 70%로 높였다.

문제는 IPIC가 배당금을 1억8800만 달러까지만 받고 더 이상 받아가지 않으면서 생겼다. 현대중공업은 IPIC가 현대오일뱅크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일부러 2억 달러를 채우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현대중공업은 2008년 3월 국제중재재판소에 IPIC를 계약 위반으로 제소했고, 국제중재재판소와 국내 법원이 잇따라 현대중공업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염태정·최선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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