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잃은 잔치 쓸쓸한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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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2002 광주 비엔날레'가 93일 동안의 일정을 마치고 29일 막을 내린다. 월드컵 4강 신화를 일군 빛고을은 떠들썩했지만, '멈춤'을 주제로 내세웠던 광주 비엔날레는 적막했다. 나랏돈 83억6천만원을 들인 대규모 미술 프로젝트치고는 쓸쓸한 잔치였다.

24일까지 공식 집계된 관람객 수는 54만3천1백32명이었고, 하루 평균 6천1백54명이 다녀갔지만, 예년처럼 관객 산정을 뻥튀기했다는 뒷말이 흘러나왔다. 물론 미술 전시회를 축구 시합과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4회째를 맞으며 아시아를 대표하는 격년제 미술 축제로 떠올랐다는 광주 비엔날레가 마무리로 접어드는 길은 착잡하다. 5·18 자유공원을 전시장으로 해 광주의 역사적 특수 상황을 미술과 접목시킨 '프로젝트3집행유예'나 도시 공간을 건축으로 끌어들인 '프로젝트4접속' 등 호평받은 전시 내용은 제쳐두고라도, 되풀이되는 조직·구성 문제가 만성 고질병으로 굳어지는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미술계에서 광주를 바라보는 시각도 엇비슷하다. 한국 미술판이 처한 다양한 문제점이 집적돼 드러났다는 비판에서부터, 노쇠한 미술계의 현재 인적 자원으로는 그 해결의 실마리를 풀 수 없다는 극단론까지 다양한 의견이 떠올랐다. 2년 뒤 제5회 광주 비엔날레는 분명 이제까지와는 다른 혁신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이 공통된 시각이다. 그 얘기들을 모아 올 광주 비엔날레를 결산한다.

▷성완경 예술감독=미술 잔치를 통해 '신바람'을 일으키려던 기획자들의 뜻이 재단이나 광주시 관계자들과 한 호흡을 이루지 못했다. 지금 폐막 1주일을 앞둔 상황에서 전시가 질식할듯 메말라가는 분위기가 가장 참을 수 없다. 부끄럽고 괴로운 건 비엔날레 실무자들을 전시 용역업자로 바라보는 일부 편협한 눈길이다. 전문성을 갖춘 조직과 인력이 절대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미술계 전체가 함께 하는 마음이 없다는 게 아쉽다.

▷이영철 계원조형예술대 교수·제2회 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국내에 현재 진행 중인 미술의 흐름, 국제 비엔날레의 정보 수집 및 전시 분석을 하는 전문가를 찾아볼 수 없다. 이제 외국 큐레이터들에게 의존하는 '복덕방 비엔날레'는 그만해야 한다. 예술감독을 선정하는 이사회가 국제비엔날레를 이해하지 못하는 연로한 국내 작가들로 구성돼 있는 것도 걸림돌이다. 국제·국내 미술 무대의 최전선에서 활동하는 작가들과 큐레이터가 낡은 관행을 고쳐가며 현장에서 뛰어야 한다. 예산 지출에서 인건비 부분을 줄이고 전시 비용을 늘려 잡아야 하는 것, 재단을 완전 민영화하는 것 등은 해묵은 숙제다. 하지만 비엔날레를 몇 회씩 열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주인인 한국 미술인들 얼굴이 전시장에 보이지 않으니. 가장 자유로워야 할 미술인들 자신이 너무 심각하게 닫혀 있다.

▷윤재갑 큐레이터=1백억원에 가까운 큰 돈을 들여 전시를 치른 경험이 없는 상황에서 쓸데없는 지출이 너무 많다. 더구나 지역민들이 낸 세금이 단 한 점의 작품으로도 남지 않는다는 건 일회성 전시라는 푸념을 들을만하다. 무엇보다도 젊은 한국 큐레이터들을 키워야 한다. 30대 전시 기획자들을 현장에 보내 미래의 한국형 큐레이터를 길러내는 게 시급하다. 또 비엔날레와 연계할 수 있는 국제 아트페어가 병행되면 문화·경제적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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