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종류의 사이언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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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말이 있다. 역사에 등장하는 인물이 되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그 등장 인물들의 행동 패턴이 비슷하다는 의미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패턴을 알아서, 가령 대통령의 아들들이 되풀이해 잡혀들어가는 것을 보며 그러한 패턴이 재연되는 이유를 찾고자한다. 물론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사실이 공통적 원인이라고 생각되지만 그러한 환경이 비리의 충분조건이라 인정되지는 않는다.

바둑은 가로 세로 19줄로 된 판 위에 흰돌·검은돌을 몇 가지 간단한 규칙에 따라 놓게 하고, 땅을 넓게 차지하면 승리하는 게임이다. 판도 작고 규칙은 간단하지만 게임의 복잡성은 무궁해 같은 바둑이 두번 두어지는 경우를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하나같이 다른 기보들을 모아 보면 반복되는 패턴들을 발견하게 된다. 오랜 시합을 통해 승리하는 데 유리한 수들을 사람들이 선택하게 된 결과다. 그렇게 하여 소위 정석이라는 것이 생겨난다. 대통령 아들의 정석은 승리에 유리하지만 대응전략을 유도해 패배하기도 쉬운데, 승패의 충분조건은 아니다.

정석이 형성되는 과정, 즉 간단한 규칙에서 출발해 복잡한 패턴이 나타나는 현상을 창발(이머지)이라고 부른다. 초기 조건·규칙을 조금 바꾸면 뒤이어 나타나는 패턴은 엄청나게 달라진다. 바둑에서는 먼저 두는 사람이 유리하기 때문에 5집반을 공제하는데 이것을 6.5집으로 늘리면 시합하는 사람들이 선택하는 수들은 달라지기 시작하고 결국 정석의 모습도 크게 바뀐다.

바둑이 19줄 선들이 마주치는 3백61개의 점에 돌을 놓는 경기라면, 선 사이의 3백24개 칸을 흰색·검은색으로 칠하는 경기가 있다. 가령 흰색 옆에 검은색이 오게 하고, 흰색끼리나 검은색끼리는 곁에 있지 못하게 하면 얼룩무늬가 생긴다. 더 나아가 바둑판의 칸(세포)을 채우는 규칙을 다양화해 모든 칸을 다 검게 채우고, 하나의 칸만 흰색으로 채우고 옆칸으로 옮겨가게 하면 흰줄을 그을 수 있다. 비슷하게 얼룩무늬를 움직이고 모양을 바꿀 수 있다. 이렇게 규칙을 조금씩 변화시킨 여러 종류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데, 총괄해 세포 자동자(CA:Cellular Automata)라고 부른다. 사람들이 만드는 동영상의 카드섹션을 상상하면 좋겠다.

여러 CA 프로그램이 컴퓨터 화면에서 만들어 내는 다양한 패턴을 보면 자연현상과 유사함에 놀라게 된다. 20세에 캘리포니아 공대의 교수가 된 조숙한 천재 수학자 스티븐 월프람은 지난 5월 14일, 사용한 CA규칙에 따라 컴퓨터가 만들어 내는 패턴을 자연현상에 대비해 정리한 『새로운 종류의 사이언스』를 출간했다. 월프람은 자연과 인간의 연구는 주로 간단한 프로그램들과 그들의 상호작용으로 연구되고, 지금처럼 수학공식으로 표현하는 방식은 사라질 것이라 주장한다. 우리 주변의 자연은 무수히 많은 간단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돌아가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고, 모르는 것들은 컴퓨터에 모델을 만들어 이해해야 한다. 심안으로 보는 세계가 모든 사람에게 열렸다고나 할까. 샌타페이 연구소의 성과를 뛰어넘는 월프람에 대해 월드컵처럼 열기가 달아올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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