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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과 적발, 그리고 처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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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월드컵 연승의 후유증이 만만치 않다. 우리에게 패한 이탈리아와 스페인이 심판 판정에 강하게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탈리아와의 경기 후 세계 축구 팬을 상대로 한 CNN의 여론조사에서는 3대1 정도로 판정을 지지하는 의견이 우세하지만, 심판은 물론이고 한국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감정적인 반론도 적지 않아 마음이 언짢다.

승부의 우연성이 큰 축구

심판도 사람인 만큼 실수할 수 있다.김동성 선수의 금메달 박탈도 온 국민의 분노를 사지 않았던가. 더욱이 축구는 다른 경기보다 오심 가능성이 더 크다. 경기장 면적과 선수들 수에 비해 심판 수가 가장 적기 때문이다. 또한 극적인 장면의 영상 리플레이(replay)에 의한 재심이 허용되지 않으며, 극히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면 주심과 부심이 합의 판정을 내릴 수도 없다. 어쩌면 이처럼 오심 가능성이 크기에 애초부터 승부의 우연성이 큰 축구의 묘미가 배가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설사 축구경기의 재미가 반감되더라도, 반칙을 묵인하거나 오심을 미화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 고의로 상대방에게 부상을 가하는 반칙이나 오심을 유도하는 교활한 행위는 응징해야 마땅하다. 그러자면 반칙의 '기대비용'을 높일 수밖에 없다. 반칙의 기대비용을 구성하는 요소는 두 가지로 대별된다. 하나는 반칙을 범했을 때 적발될 확률이며, 나머지 하나는 반칙이 적발되었을 때 처벌의 수준이다.

적발 확률을 높이려면 농구처럼 주심의 수를 두명 또는 그 이상으로 늘리면 된다. 벌칙구역에서의 반칙이나 경고 이상의 중대한 반칙 혐의가 있을 때에는 경기를 중단하고 미식축구처럼 영상 재심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 처벌의 강화는 곧 경고나 퇴장의 수위 조절을 뜻하지만, 핸드볼이나 하키처럼 양자의 중간쯤 되는 '시간제 퇴장' 벌칙을 신설하는 방안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방안이 합리적인가. 아니 모든 방안을 한꺼번에 도입하면 안될까. 비단 축구경기에만 적용되는 고민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난무한 불법 선거운동이나, 대통령의 아들들이 연루된 부패행위도 경기규칙을 어긴 불공정하고 위험한 반칙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베커는 이에 관해 흥미로운 논점을 제기했다. 범죄가 적발될 확률은 무한소로 낮추되, 벌칙을 무한대로 높이는 일벌백계(一罰百戒)가 최선의 정책이라는 것이다. 감시는 느슨히 하되, 잘못이 드러나면 엄벌하는 셈이다. 감시하려면 사회적 비용이 꽤 들지만, 처벌은 주로 당사자 개인의 비용만 수반하므로 후자의 강화가 더 효율적이라는 것이 그 논거다.

그러나 베커의 제안은 부작용이 많다. 우선 선량한 사람을 잘못 적발하는 오심의 폐해가 심각하고, 감시가 느슨하므로 때로는 바늘도둑을 오히려 소도둑으로 키울 수 있다. 적발되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운 없게 적발된 극소수 사이에 수평적 형평성도 문제다. 심판을 매수하려는 유인 역시 증가한다. 따라서 무작정 엄벌이 능사가 아니라, 잘못의 경중에 따른 차별적인 양형이 합리적이다. 축구에 대입하자면, 퇴장의 남발보다 '시간제 퇴장'의 신설이 무난한 대안인 셈이다.

감시 우선이냐 벌칙 강화냐

그렇더라도 감시와 처벌 중 어느 수단이 더 효과적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는다. 역사적인 경험도 엇갈린다. 제정러시아의 이반 뇌제(帝)는 부패한 관리를 사형에 처했고, 피터 Ⅰ세는 수뢰자의 직위와 재산을 신고자에게 부여하는 극단책에 의해 치밀한 감시망을 구축했지만 그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반면에 1960년대 싱가포르의 리콴유(光耀)총리와 90년대 우간다의 무세베니 대통령이 채택한 엄벌 위주의 강경책, 그리고 50년대 마오쩌둥(毛澤東)주석이 '3반(反)운동'을 통해 확립한 신고망은 부패 척결에 크게 기여했던 것이다.

다만 여러 실증분석 결과, 감시는 경범과 경제범에 효과적이며 처벌은 중범과 비경제범에게 위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원용할 경우 축구경기의 반칙은 전자에 가까우므로, 심판 수를 늘리거나 재심제를 도입하는 것이 벌칙의 강화보다 나으리라는 추론은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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