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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운재 "결승행 열쇠 내손에" 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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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바르테즈(프랑스)도 칠라베르트(파라과이)도 사라졌다. 이제 남은 건 독일의 올리버 칸(33·바이에른 뮌헨)과 한국의 이운재(29·수원 삼성)뿐.

25일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벌어질 한국과 독일의 4강전에서 이운재와 칸이 최고 골키퍼 자리를 놓고 한판 대결을 펼친다. 둘은 이미 1994년 미국 월드컵 조별리그에서 맞닥뜨린 적이 있다. 그러나 당시 칸은 후보로서 벤치 신세에 머물렀고 이운재는 주전인 최인영을 대신해 후반에 교체 투입됐기 때문에 이번이 '진짜 승부'라고 볼 수 있다.

8년 만에 격돌하는 두 '거미손'은 각자 소속팀의 결승 진출 키를 쥐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운재=느리지만 진중하게

그는 도무지 눈에 띄지 않는다.'저렇게 해도 국가대표 골키퍼를 맡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 만큼 화려하지도, 톡톡 튀지도 않는다. 그러나 그는 순간 판단이 빠르고 안정적이라는 칭찬을 듣는다. 바로 이 점을 히딩크 감독은 높게 샀다고 한다.

이런 이운재지만 승부의 순간엔 매섭게 변한다. 본능적인 촉각을 곤두세운 채 탁월한 판단력으로 제공권에선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는 경희대 3학년 때 태극 마크를 달아 94년 월드컵에도 출전한 유망주였다. 그러나 96년 애틀랜타 올림픽을 앞두고 갑작스레 폐결핵 보균자로 밝혀져 올림픽 무대에 나가지 못한 채 2년을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의 신중한 플레이는 힘겨웠던 축구 인생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칸=카리스마로 똘똘 뭉친 전차군단의 필드 지휘자

무표정한 얼굴.그는 게르만인의 순혈을 꿋꿋이 지키려는 듯 차갑고 무겁다. 필드 플레이어가 아님에도 주장 완장을 차게 된 것은 이러한 카리스마 덕분이다.

평소 볼 처리는 안정적이나 1대 1 위기에선 공격수를 향해 과감히 돌진하는 맹수성(猛獸性)도 보인다. 이번 대회 다섯경기에서 실점은 단 한점뿐. 게임당 실점률은 0.2로 그야말로 철벽이다. 그러나 이런 명성 뒤에는 그도 무명의 20대를 보낸 설움이 있었다. 그는 지난 두차례 월드컵에서 매번 대표팀에 발탁되고도 선배들에게 밀려 한번도 그라운드에 서지 못했다. 항상 2인자에 머물렀다."98년 월드컵 때는 29세로 남들은 전성기라 했는데 한번도 뛰지 못해 막막했다"고 그는 당시를 회고하곤 했다.

결국 인고의 세월을 견뎌낸 내공이 그에게 노련미와 관록을 안겨주었으며 지난해 '독일 올해의 선수'가 된 데 이어 이번 월드컵에서 맹활약,'전차 군단'의 부활을 주도했다.

최민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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