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富 뒤로 하고 목숨건 열기구 모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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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주식중개로 떼돈을 번 사나이. 그러나 그는 '미다스의 손'이라는 찬사보다 '거친 모험가'로 불리고 싶었다.

백만장자인 스티브 포셋(58·미국)이 열기구 단독 세계일주에 여섯번째로 도전장을 내밀었다. 1997년 이후 다섯번의 도전이 악천후와 리비아 등 일부 국가의 영공통과 문제에 부닥치면서 번번이 좌절했던 그였다.그러나 실패가 거듭될수록 모험심은 더욱 격렬하게 타올랐다.

지난 19일 호주 서부의 소도시 노탐. 55만입방피트의 헬륨가스를 채워야 하는 기구가 이륙에 앞서 바람에 몇차례 들썩이자 그의 얼굴엔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1천여명의 관람객이 보내는 시선은 무거운 짐이 되어 어깨를 짓눌렀다. 지난해 여름 다섯번째 비행의 쓰린 기억이 되살아난 것일까. 조심스레 기구를 어루만지는 그의 손길이 살며시 떨렸다. 당시 포셋은 천둥·번개를 만나 사투를 벌인 끝에 출발 12일 만에 브라질 남부에 가까스로 착륙했었다. 살아남은 것만도 다행이었다.

이번에도 7천~8천5백m 상공을 최고시속 2백㎞로 이동하는 험한 여정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태평양을 건너고 남미 안데스 산맥을 넘어 지구 남반구를 한바퀴 도는 데 총 2만8천㎞를 날아야 한다. 기상 상황이 계속 좋으면 20일 정도 걸릴 전망이다.

포셋은 노탐에 불던 바람이 잠잠해진 틈을 타 기구에 헬륨가스를 주입했다. 이윽고 '스피릿 오브 프리덤(자유의 영혼)'이라는 글씨가 선명한 하얀색 기구가 불룩하게 부풀어 올랐다. 포셋은 기구에 몸을 실었고, 이내 구름 사이로 멀리 사라져갔다.

그는 부러울 것 없는 성공한 금융인이다. 명문 스탠퍼드대학을 졸업하고 세인트루이스의 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학위를 받은 뒤 주식중개인으로 경력을 쌓았다. 이후 시카고에서 라코타 트레이딩 등의 금융회사를 운영하며 수백만달러의 재산가가 됐다.

그러나 앞만 보고 달려온 포셋은 어느 순간 묘한 허탈감과 함께 가슴 속에서 타고난 모험가 기질이 꿈틀대고 있음을 느꼈다. 그는 새로운 세상에 도전키로 작정했다. 1985년엔 영국해협을 헤엄쳐 건넜고, 95년에는 세계 최초로 기구를 이용해 태평양을 횡단했다. 지난해 10월엔 9명의 승무원과 함께 뗏목을 타고 뉴욕에서 런던 사이의 북대서양 뱃길을 건너기도 했다. 이때 세운 4일17시간이란 대서양 횡단기록을 포함해 그가 보유한 공인 항해 세계기록만 7개다.

일부에선 한번에 수십만달러가 드는 그의 모험여행을 갑부의 호사(豪奢)로 치부하지만, 포셋은 당당하다. "나의 인내력과 한계를 시험하기 위해 모험에 뛰어든다"는 것이다. 실제로 망망대해 위의 기구 안에서 죽음의 공포에 몸서리친 적이 많았고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도 당했지만 그의 열정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포셋의 앞엔 끝없이 쏟아지는 졸음과 지독한 외로움, 순식간에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폭풍우가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지구를 한바퀴 돌아 눈부신 호주 해변이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날을 기다리며 지금도 하늘을 날고 있다.

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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