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8강'에 배아픈 中언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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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한국의 월드컵 8강 진출에 기쁨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중국에 거주하는 한국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요즘 중국 내 교민들은 다소 당황스럽다. 중국 언론들의 한국 축구에 대한 억지 섞인 주장들 때문이다.

"이탈리아 선수들의 옷을 잡아당기면서 일궈낸 한국 축구의 8강 진출은 아시아의 치욕" "우리는 하룻밤에 졸부가 돼버린 (한국)사람들을 칭찬할 수 없다" "억지로 떠받들어진 한국 축구팀은 분명히 속으로 썩은 사과다"는 등의 역겨운 평론이 중국의 각종 매체를 장식하고 있다.

한국과 이탈리아 전에서 '심판의 판정이 공정했느냐'는 인터넷 설문에 중국인 응답자의 82%가 "공정하지 않았다"고 대답했다.

일부 매체는 "마피아보다 더 검은 손이 경기를 조종했다"면서 이탈리아 매체보다 한술 더 떠 한국팀 깔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축구 열기가 높은 남부 광둥(廣東)성의 매체들은 "앞으로 개최국과의 경기는 피해야 한다"느니 "이탈리아 2류 팀에서 뛴 안정환이 유벤투스·AC 밀란 등의 일류 선수들을 압도하는 게 실제 가능했겠느냐"는 엉뚱한 주장을 펴기도 했다.

한 걸음 더 나아간 매체들은 "한국을 위해 환호하지 말자, 그리고 월드컵을 위해 환호하지 말자"고 역설하는가 하면 "아르헨티나가 졌을 때 나는 울었고, 포르투갈이 떨어졌을 때 나는 분노했으며, 이탈리아팀이 밀렸을 때 나는 냉소할 수밖에 없었다"며 기사인지, 감상문인지 모를 글을 싣기도 했다.

물론 중국의 모든 매체가 이런 것은 아니다. 석간 북경만보(北京晩報)는 "이탈리아전의 승리는 한국 정신력의 승리"라는 주장을 일관되게 펼치면서 한국 축구에 비해 크게 뒤처진 중국 축구의 문제점을 거론하기도 했다.

하지만 중국 매체의 주된 논조는 "한국이 어떻게 감히…"라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시샘일까, 아니면 작은 나라를 깔보는 대국(大國)의식의 발로일까. "둘 다 복합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국 내 교민들의 우선적 반응이다. "이 기회에 중국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일 월드컵은 이래저래 우리에게 많은 것을 깨우쳐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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