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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로 보는 세상] 易地思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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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중국 하(夏)나라 시조 우(禹)와 주(周)나라 시조 후직(后稷)은 태평성대에 살았다. 그들은 자기 집 대문 앞을 지나면서도 집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정사(政事)에 충실했다. 그들에 비하면 공자의 제자 안회(顔回)가 살던 시기는 난세(亂世)였다. 그럼에도 그는 불평하지 않았다. 안회는 하루 한 끼로 생활했어도 이를 즐거움으로 여겼다. 맹자는 안회의 인물됨을 평가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와 후직, 안회의 사람 됨은 크게 다르지 않다. 치수(治水)에 능한 우는 백성들이 수재를 만나면 내 일처럼 안타까워했고, 농법 개발에 능한 후직은 굶주린 자가 있으면 마치 자기 잘못인 양 안타까워했다. 안회의 어진 마음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우와 후직, 안회가 서로 처지를 바꿨어도 하는 행동은 같았을 것이다(易地則皆然)”.

『맹자』 ‘이루(離婁)’ 편에 나오는 얘기다. ‘입장을 바꾼다’는 뜻의 ‘역지(易地)’가 여기서 비롯됐다. 이 말은 역지사지(易地思之·입장을 바꿔 생각한다), ‘역지이처(易地而處·남의 입장에 처한다)’ 등으로 발전했다. ‘역지’라는 말에 상대에 대한 배려의 뜻이 담겨 있다. 요즘 말하는 상생(相生)의 전제 조건이 바로 ‘역지’였던 셈이다.

공자가 말한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자기가 원하지 않는 것은 남에게도 시키지 말아야 한다)’에도 ‘역지’의 철학이 담겨 있다. 남송 시대 철학가인 주희(朱喜)는 이 글귀를 설명하며 ‘추기급인(推己及人)’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다가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세상사 모든 것을 자기 뜻대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 게 현실이다. 내 논에 먼저 물을 끌어 댄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태도다. 현대 중국어 사전에는 ‘아전인수’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는다. 대신 ‘비수불류외인전(肥水不流外人田)’을 많이 쓴다. ‘기름 진 물은 다른 사람의 논에 흘려 보내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사회에 ‘소통(疏通)’이 화두다. 정치지도자와 국민, 사장과 평사원, 대기업과 중소기업,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대화가 끊기고 있기 때문이리라. 소통의 방법은 하나, 역지사지하는 것이다. 우선 남의 입장이 되어 상대를 생각한다면 풀리지 않을 갈등은 없을 터….

한우덕 중국연구소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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